공존 3

꼭대기의 수줍음

능선에서 자라는 나무를 멀리서 보면 키가 잘 맞추어져 있다. 누구 하나 우뚝 서려 하지 않고 골고루 햇빛을 받으며 자라난다. 비슷한 현상으로 숲에 들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면 나무들이 제 영역을 지키는 걸 볼 수 있다.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 각자의 영역을 적당하게 확보해서 공간을 골고루 나눠 쓰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꼭대기의 수줍음'이라 명명했다. 나무는 자기 절제를 할 줄 안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공동체를 위해서나 제일 현명한 선택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저 혼자만 잘살려고 싸우다가는 함께 파멸이라는 걸 나무는 안다. 인간 세상과 너무 비교된다. 나무를 시인이요, 철인(哲人)이라 불러 마땅하다. 우리나라 국민의 90%가 부자를 존경하지 않는..

참살이의꿈 2018.09.16

늑대가 없는 숲은 없다

서울 성동구에 응봉산이 있다. 봄이면 온통 개나리꽃으로 뒤덮이는 산이다. 산 위에서 노란 물감을 부은 듯 개나리가 만개하면 장관이다. 응봉산에는 개나리만 산다. 저절로 그리되었을 리는 없고, 인위적으로 가꾼 탓이다. 색다른 풍경이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자꾸 보면 뭔가 어색하다.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이 어울려 자라고 동물이 뛰놀아야 숲이다. '늑대가 없는 숲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숲에는 토끼도 살지만 늑대도 산다. 그래야 숲이다.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는다. 인간의 기준으로 호불호가 엇갈리고, 어떤 것은 배척하려 한다. 늑대는 인간에게 득보다는 실이 많은 동물이다. 밤에는 인가에 내려와 가축도 죽인다. 차라리 늑대가 없었으면 하고 바랄 수 있다. 그러나 늑대가 사라지면..

참살이의꿈 2013.03.20

아로파

최근에 SBS TV에서 꽤 괜찮은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제목이 '최후의 제국'[The Last Capitalism]인데 병든 자본주의를 고발하면서 대안을 찾는 다큐멘터리였다. 이번 주에 방송된 4부는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에 있는 '아누타'라는 작은 섬을 소개했다. 아누타는 24가구 300명의 원주민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낙원 같은 섬이다. 300년 전에는 이 섬에서도 권력 투쟁이 일어나 고작 4명만이 생존했다고 한다. 그 뒤로 이들은 협력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로파'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아로파'는 사랑, 배려, 돌봄, 나눔 등의 뜻을 가진 단어다. 아로파가 최고의 가치가 된 후 섬은 평화의 섬이 되었다. 물질이 아닌 사람 우선의 공동체다. 농작물이나 수산물은 골고루 공평하게 나눈..

참살이의꿈 2012.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