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아로파

샌. 2012. 12. 14. 10:43

최근에 SBS TV에서 꽤 괜찮은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제목이 '최후의 제국'[The Last Capitalism]인데 병든 자본주의를 고발하면서 대안을 찾는 다큐멘터리였다.

 

이번 주에 방송된 4부는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에 있는 '아누타'라는 작은 섬을 소개했다. 아누타는 24가구 300명의 원주민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낙원 같은 섬이다. 300년 전에는 이 섬에서도 권력 투쟁이 일어나 고작 4명만이 생존했다고 한다. 그 뒤로 이들은 협력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로파'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아로파'는 사랑, 배려, 돌봄, 나눔 등의 뜻을 가진 단어다. 아로파가 최고의 가치가 된 후 섬은 평화의 섬이 되었다. 물질이 아닌 사람 우선의 공동체다. 농작물이나 수산물은 골고루 공평하게 나눈다. 자원이 부족하고 열악한 환경이지만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다. 아기나 병자는 특별한 보살핌을 받는다.

 

아누타 섬에 비해 자본주의는 돈에 눈이 먼 세상을 만들었다. 앞에서는 출석이 양호하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돈으로 보상하는 학교도 소개되었다. 돈이 최고 가치가 된 세상은 그 탐욕으로 몰락한다. 경제대국 미국에서는 소외된 극빈계층이 점점 증가한다. 카메라는 자본주의 붕괴의 징조를 여러 군데 보여준다.

 

프로그램에서는 고장 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이탈리아 볼로냐의 협동조합 운동을 소개한다. 협동조합은 개인주의에 공동체 정신을 가미한 것이다. 볼로냐는 주민 소득이 이탈리아 평균의 2배로 높아졌다. 자본주의에서도 공존이 가능한 사례다. 특별한 1%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풍요로울 길이 있다. 우리의 가치 철학을 바꾸는 게 우선이다.

 

아누타 섬에 대비되는 게 이스터 섬이다. 이스터 섬은 부족 사이의 경쟁과 환경 파괴로 수백 년 전에 멸망했다. 유럽인이 찾았을 때는 해변에 미스터리한 석상만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이스터 섬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경고가 있다. 인간이 지구에 하는 짓거리는 파멸을 앞당긴다.

 

제작진이 섬에서 떠나는 날, 섬 주민들은 해변에 모여 이별을 슬퍼한다.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라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방문객들과 인간으로서의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공감과 배려, 사랑의 실천에서 인류의 미래를 읽는다.

 

세상은 복잡하고 거대한 정글로 변했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누타 섬이 보여준다. 그러자면 탐욕과 성장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로파가 제일 가치가 되는 지역 중심의 자치적인 소공동체가 삶의 기본 터전이 되어야 한다. 아로파는 산업화되기 이전의 우리 농촌 공동체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정신이기도 하다.

 

아누타 섬을 보면서 노자와 장자가 꿈꾸었던 공동체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 공존하는 독립적인 작은 공동체가 바로 아누타 섬이었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볼 때 과연 이런 공동체가 가능할까, 하는 회의가 있었는데 태평한 한가운데 작은 섬에서 실제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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