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3

혜화경찰서에서 / 송경동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려 가니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청계천 탐엔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 했고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리곤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트럼펫이나 아코디온도 좋겠지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나를 평가해보겠다고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저 바닷..

시읽는기쁨 2011.12.16

그 섬에 가고 싶다 / 장혜원

섬, 바로 그 섬 바다와 하늘이 가슴을 맞대고 병풍처럼 감싸안고 있는 그 섬에 가고 싶다 사나흘 쯤 소리가 없는, 울림이 없는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 섬에 묵고 싶다 그대와 묵고 싶다 붉게 물든 노을 한아름 걷어다가 이불을 삼고 밤바다에 첨벙거리는 별 하나 등불 삼아 매달아 그대 숨소리 가슴에 안고 그대 체온 피부로 느끼며 밤새워 우리만의 연가를 부르리 뜻밖의 풍랑을 만나 이틀 쯤 발이 묶인다면 발을 동동 구르리 가슴 속의 기쁨 그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숨 죽이리 - 그 섬에 가고 싶다 / 장혜원 일탈 욕구도 인간의 기본 욕구라고 한다. 사실 사람은 어느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편안함을 느낀다. 혼자라는 것만큼 외롭고 불안한 것도 없다. 출생 지역이나 출신 학교끼리 울타리를 만들고 '우리가 남이가..

시읽는기쁨 2009.12.26

염소와 풀밭 / 신현정

염소가 말뚝에 매여 원을 그리는 안쪽은 그의 것 발을 넣고 깨끗한 입을 넣고 몸을 넣고 줄에 매여 멀리 원을 그리는 안쪽은 그의 것 염소가 발을 넣고 뿔을 넣고 그리는 원을 따라 원을 그리는 하늘도 안쪽은 그의 것 그 안쪽을 지나가는 가슴 큰 구름이며, 새들이며 뜯어먹어도 또 자라는 풀은 그의 것, 그러하냐. - 염소와 풀밭 / 신현정 말뚝에 매인 것이 염소만은 아니다. 누구나 이 시를 읽으면 자신을 염소에 대입시키게 된다. 줄의 길고 짧음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말뚝의 운명을 타고 났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런 사실을 비관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에게 주어진한정된 범위의 삶을 즐기고 자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 안의 풀이 나의 것이듯, 원의 안쪽을 지나가는 구름이며, 새들 또한 나의 즐거움이 ..

시읽는기쁨 2008.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