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3

풍경(31)

흰 그림자.... 흑백필름을 현상하면 음영이 거꾸로 되어 나타난다. 거기에 빛을 비추어야 우리가 정상이라고 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림자가 꼭 검어야 할 당위는 없다. 뒤집힌 세계 역시 하나의 세계다. 필름의 기억이 떠올라 재미삼아 음영을 바꾸어 보았다.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으로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

사진속일상 2014.03.24

장자[209]

자기 그림자가 두렵고 발자국이 싫어서 떨쳐버리려고 달리는 자가 있었다. 발을 들어 올리는 것이 더욱 잦아질수록 발자국은 더욱 많아지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느리다고 생각하여 더욱 빨리 달리며 쉬지 않았다. 드디어 힘이 빠져 결국 죽고 말았다. 그 사람은 그늘에 처하면 그림자도 쉬고 처함이 고요해지면 발자국도 그친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어리석음이 얼마나 심한 것인가? 人有畏影惡迹 而去之走者 擧足愈數 而迹愈多 走愈疾 而影不離身 自以爲尙遲 疾走不休 絶力而死 不知處陰以休影 處靜以息迹 愚亦甚矣 - 漁父 2 이 비유를 읽으며 문득 이상의 '오감도'가 떠올랐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

삶의나침반 2012.06.07

그림자

어제 밤, 퇴근하는 길 가로등 불빛을 받은 나무 그림자가 벽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물체의 그림자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길 위에 또는 벽에 드리운 그림자들, 특히 앙상한 나무 가지가 만드는 그림자 무늬에는 자주 발길을 멈추게 된다. 플라톤은 동굴 비유로 그림자 현실과 이데아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우리네 삶이란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더 높은 차원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림자가 주는 이미지는 특별하다. 그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무언가를 말하는 듯 하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이다. 罔兩이 景에게 물었다. "당신이 조금 전에는 걸어가더니 지금은 멈추었고, 조금 전에는 앉았더니 지금은 일어섰으니, 왜 그렇게 줏대가 없소?" 景이 대답했다. "내가 딴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런 것 ..

사진속일상 2003.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