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육면체 물, 동그란 물, 길고 긴 물, 구불구불한 물, 봄날 아침 목련꽃 한 송이로 솟아오르는 물, 내 몸뚱이 모습 그대로 걸어가는 물, 저 직립하고 걸어다니는 물, 물, 물...... 내 아기, 아장거리며 걸어오던 물, 이 지상 살다갔던 800억 사람 몸 속을 모두 기억하는, 오래고 오랜 빗물, 지구 한 방울. 오늘 아침 내 눈썹 위에 똑 떨어지네. 자꾸만 이곳에 있으면서 저곳으로 가고 싶은, 그런 운명을 타고난 저 물이, 초침 같은 한 방울 물이 내 뺨을 타고 또 어딘가로 흘러가네. -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 / 김혜순 지금 내가 숨 쉬는 한 호흡 속에도 우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땅속 깊은 곳의 마그마인 적도 있고, 600년 전 세종대왕의 폐에 들어갔던 공기 분자도 있을 것이다. 생명이 다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