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5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

시읽는기쁨 2011.09.09

먼산 바라기 / 박찬

산을 오르는 것은 거기 산이 있어서만이 아니다. 산 너머 풍경이 그리운 때문이다. 산기슭 어느 한적한 마을이 그려지는 것이다. 산을 넘으면 또 산. 그 너머 널따랗게 펼쳐진 들을 지나 뉘엿뉘엿 해 넘어가는 산 그 어디쯤.... 피처럼 나를 당기는 풍경이 그리웁기 때문이다. 그 풍경, 실은 나도 몰라, 산 넘어 산마을 지나, 강 건너 들을 지나 해지는 서산을 바라보며 가고 있는 것이다. 끝없이 먼산 바라기를 하는 것이다. - 먼산 바라기 / 박찬 '먼.산.바.라.기.'로 블로그의 문패를 바꾸었다. '먼산바라기'는 그저 먼 산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다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이다.이 말에 담긴이미지를 그리다 보면 어릴 적 따스한 햇살 비치는 툇마루에서 나른하게 먼 산을 바라보던 모습이 떠오른다. 열병을 앓고난 ..

시읽는기쁨 2010.03.06

깃발 / 유치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 깃발 / 유치환 거센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두 스님이 논쟁을 하고 있었다.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라 했고, 다른 스님은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라 했다. 이에 육조 혜능선사가 말했다. "바람이 윰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움직인다는 말입니까?"혜능이 답했다. "두 사람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시인이 본 깃발이나 혜능선사가 본 깃발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펄럭이는 깃발에서 마음을 읽은 것이..

시읽는기쁨 2009.05.20

동경

나는 '동경'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동경(憧憬)은희망이나 소망과는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동경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며 그것만을 생각함'이라고 나와 있지만, 그리워하는 대상이희망이나 소망과는 다른 것으로 나에게는 생각된다. 희망이나 소망에는 바라는 모든 것이 포함되는데, 감각적이고 즉물적인 것도 그것들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동경이라고 하면 뭔가 정신적이며 영적인 것을 그리워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동경은 현실세계 뒤편에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며, 완전함에 대한 또는 절대에 대한 사모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영원 또는 신성과 하나 되려는 동경이 존재한다. 현실의 만족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갈증이며 갈망이다. 그것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한데..

참살이의꿈 2008.03.03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

시읽는기쁨 2008.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