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3

잠꼬대 아닌 잠꼬대 / 문익환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산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 마음이었거든 한 마음..

시읽는기쁨 2017.07.08

꿈을 비는 마음 / 문익환

개똥 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마는 조개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그러니 벗들이여! 보름달이 뜨거든 정화수 한 대접 떠 놓고 진주 같은 꿈 한자리 점지해 줍시사고 천지신명께 빌지 않으려나!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오? 155마일 휴전선을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굽어 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

시읽는기쁨 2009.01.01

난 발바닥으로 / 문익환

하느님 이 눈을 후벼 빼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볼 겁니다 이 고막을 뚫어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들을 겁니다 이 코를 틀어막아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숨을 쉴 겁니다 이 입을 봉해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소리칠 겁니다 단칼에 이 목을 날려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당신 생각을 할 겁니다 도끼로 이 손목을 찍어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풍물을 울릴겁니다 창을 들어 이 심장을 찔러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피를 철철 쏟으며 사랑을 할 겁니다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발바닥에 불질러보시라구요 젠장 난 발바닥 자죽만으로 남아 길가의 풀포기들하고나 사랑을 속삭일 겁니다 - 난 발바닥으로 / 문익환 늦봄 문익환 목사님(1918-1994). 목사님은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셨다.목사님은 장준하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민주화 운..

시읽는기쁨 2005.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