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 3

미황사 / 박남준

미황사까지는 아직 멀다 마음은 저 산너머로만 가 닿는데 이제 나아갈 길은 없구나 밤바다가 낯선 발자국에 자꾸 몸을 뒤집는다 여기까지라니 먼저 밀려온 물결이 땅 끝에 이를 때마다 부르지 않은 지난 일들이 나지막한 이름을 부른다 봄밤이 깊다 달마산 너머 열나흘 지나 보름 달빛이 능선을 향해 오를수록 산은 한편 눕고 혹은 일어나기를 거듭한다 잊었다는 듯이 잊지 않았다는 듯이 그래 때가 되면 이윽고 가야지 꽃숭어리째 붉은 동백이 긴 봄밤을 끝내 참을 수 없다는 듯 땅바닥에 뚝뚝 목을 내놓는다 미황사까지가 멀다..... 그때 대웅전에 들며 나는 왜 그 말을 떠올렸을까 미황사를 등뒤로 발길을 떼놓는다 내게 있어 아득히 잡히지 않는 먼길을 떠올린다 결국 알 수 없는 그곳까지가 멀다 - 미황사 / 박남준 미황사에 가고..

시읽는기쁨 2018.04.28

미황사 / 김태정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사랑도 나를 가득하게 하지 못하여 고통과 결핍으로 충만하던 때 나는 쫓기듯 땅끝 작은 절에 짐을 부렸습니다 세심당 마루 끝 방문을 열면 그 안에 가득하던 나무기둥 냄새 창호지 냄새, 다 타버린 향 냄새 흙벽에 기댄 몸은 살붙이처럼 아랫배 깊숙이 그 냄새들을 보듬었습니다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고 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리며 나는 아물지 못한 상실감으로 한 시절을 오래, 휘청였습니다 .....색즉시고옹공즉시새액수사앙행식역부우여시이사리자아아시이제법공상불생불며얼..... 불생불멸.... 불생불멸.... 불생불멸..... 꽃살문 너머 반야심경이 물결처럼 출렁이면 나는 언제나 이 대목에서 목이 메곤 하였는데 그리운 이의 한 생애가 잠시 내 손등에 앉았다가..

시읽는기쁨 2015.02.16

2007 봄의 남도여행

동료 열두 명과 함께 1박2일로 남도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중심은 백련사와 다산초당이었고, 부근의 고금도, 미황사, 영란생가를 들렀다. 특히 백련사에서 템플 스테이로 일박을 한 것과, 아침 공양 후 주지 스님과 차를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눈 것이 색다른 경험이었다. 절의 객사에서 잠을 잔 것은 내 인생 최초의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제 버릇대로 절에서까지 밤이 늦도록 곡차를 마시며 시끄럽게 한 것은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바로 옆방에서 스님이 주무셨는데 잠이나 제대로 주무셨는지 죄송스럽기만 했다. 주지 스님과 차를 나눈 곳은 앞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주지 스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풍수지리적으로 가장 좋은 자리에 잡은 절은 소백산 부석사와 이곳 만덕산 백련사..

사진속일상 2007.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