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2007 봄의 남도여행

샌. 2007. 5. 1. 15:19

 

동료 열두 명과 함께 1박2일로 남도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중심은 백련사와 다산초당이었고, 부근의 고금도, 미황사, 영란생가를 들렀다.


특히 백련사에서 템플 스테이로 일박을 한 것과, 아침 공양 후 주지 스님과 차를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눈 것이 색다른 경험이었다. 절의 객사에서 잠을 잔 것은 내 인생 최초의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제 버릇대로 절에서까지 밤이 늦도록 곡차를 마시며 시끄럽게 한 것은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바로 옆방에서 스님이 주무셨는데 잠이나 제대로 주무셨는지 죄송스럽기만 했다.


주지 스님과 차를 나눈 곳은 앞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주지 스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풍수지리적으로 가장 좋은 자리에 잡은 절은 소백산 부석사와 이곳 만덕산 백련사라고 했다. 내 눈은 그걸 감별해낼 능력은 안 되지만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은 받을 수 있었다. 바깥 경치와 아침 햇살이 자꾸만 눈을 밖으로 유혹하는데 스님으로부터 주로 차에 대한, 그리고 다산과 혜장 스님과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특히 같이 간 동료 중 한 명과 주지 스님이 얘기 중에 사제관계인 것이 밝혀져 우리는 고맙게도 스님으로부터 맛있는 점심까지 대접 받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는 인연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게 하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첫 만남에서 유난히 호감을 느끼게 되는 사람이 있다. 마치 강한 자석에 끌리듯, 심한 경우에는 전류에 감전된 듯한 순간적인 전율을 첫 대면에서 받게 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인데 갑자기 나의 분신과 같은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다. 주로 남녀간에 첫눈에 반하는 친화력이그런 것인데, ‘본능적인 끌림’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그것은 단순한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연애감정과는 다르다. 그런 불가사의한 경험을 한 때면 전생의 인연으로 해석하고픈 유혹을 받게 된다. 다른 것으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교 신자인 A가 이런 얘기도 들려주었다. 자신이 아는 보살님이 주위에 동물만 보면 연민에 휩싸이며 눈물이 날 정도로 동정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본인도 모르는 본능적인 마음인데 어느 스님이 이 보살님을 보더니 전생에 사냥꾼이었다고 해서 모든 비밀이 풀렸다고 했다. 전생에서 살생을 지나치게 하고 동물을 모질게 대한 것이 현생에서 보상 차원으로 동물에 대한 연민과 보살핌의 마음으로 나타났다고 보면 그런대로 설명이 된다. 물론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얘기지만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존재들 사이의 인연의 신비함에 대해서 두려워지기까지 하는 경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인연 중에 이번 답사 여행에 등장하는 다산과 혜장과의 관계가 있다. 다산(茶山)은 총 18년간의 유배기간동안 처음에는 받아주는 사람이 없어 강진의 한 주막에서 생활한다. 1805년의 어느 봄날 백련사로 소풍을 갔다가 혜장(惠藏) 스님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당시 혜장의 나이 34세, 다산은 그보다 10살 위였다. 그 만남 이후 혜장은 다산을 스승으로 모시며 거처를 절 옆으로 옮기게 하고, 둘은 세상과 학문을 논하며 깊은 정이 들어간다. 다산의 경우 교유의 폭이 제한된 상태에서 혜장과의 교류가 유일한 낙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산은 혜장으로부터 차를 배우고, 그리고 둘은 아마 세상에 대한 울분을 술로 풀었을 것이다. 파격승에 가까운 혜장 스님은 결국 다산의 표현대로 하면 술병이 들어 마흔 살의 나이로 죽었다. 그때 다산의 슬픔이 어떠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다산은 혜장의 탑명(塔銘)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세월에서 그대 입 다무니 산속 숲마저 적막하기만 하다오.’ 그런데 둘의 만남이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유학자와 불제자의 거침없는 교유가 부럽기 때문이다. 다산이 큰 인물인 것은 그의 열린 마음 때문이고, 혜장 스님 또한 마찬가지다. 유교와 불교의 벽이 그들 사이에서는 허물어졌다. 지금 우리도 허물어야 할 벽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세상이 쌓은 벽,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벽에 갇혀 허덕이고 있지 않은가.

 



첫 사진과 이 사진은 강진만 풍경이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다섯 시간을 달려와 국도 옆 전망대에서 잠시 발을 멈추었다. 저 멀리 병풍처럼 둘러싼 산 능선이 무척 아름다웠다. 멀리로는 월출산도 보였다.

 



마량에서 고금도로 건너가는 카페리 위에서.....

 

고금도에 들어가서는 실망이 컸다. 어디로 가봐야할지 정보가 부족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천년학' 촬영지를 수소문하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낯 선 선착장을 배회하다가 돌아왔다.

 



우리가 묵었던 백련사 객사의 옆 방. 스님이 주무시고 나가셨던 흔적이 남아있다. 밤 늦도록 우리들의 수런거리는 소리에 잠이나 제대로 주무셨을까? 절에 들어와서도 세상일로 이리저리 시끄러웠던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넘어가는 길. 천천히 혼자 걸어가니 약 30분 정도 걸린다. 뒤에 오다가 따라잡은 동료 B가 왜 혼자 가느냐고 묻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라는 미황사(美黃寺)의 모습. 달마산의 기이한 바위 모습과 단아한 절집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에 단청이 없어 더욱 소박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곳을 여러 번 찾아온 사람 말에 따르면 예전에 비하면 건물도 여러 채 들어서고 화려해져 원래의 아름다움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내 눈에는 여전히 아름답고 고요하다. 맨 아래 사진 건물의 현판에는 '세심당(洗心堂)'이라 적혀 있다.

 

아, 그리고 자운영 만발한 남도 들녘의 아름다운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보리밭을 볼 수 있어서 고맙고 행복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모든 풍경은내 마음 속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보리밭을 통해 나는 옛날의 나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결국은 내 마음 속으로의 내면 여행이다. 여행은 그렇게 나를 돌아보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나간다.

 



이번 여행에 함께 한 사람들. 몇은 절 구경에 취해서 같은 시간에 다 모이지는 못했다. 모두가 고맙고 소중한 인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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