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 5

목현천 백일홍

백일홍은 고향과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꽃이다. 닭장 둘레에 듬성듬성 피어 있던 백일홍이 안갯속처럼 흐릿하다. 별로 주의해서 바라보지도 않은 것 같다. 흔하고 너무 오래 피어 있으니 귀한 꽃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냥 제가 알아서 피고 지고 했을 것이다. 목현천 화단에 온갖 색깔의 백일홍이 가득하다. 백일홍 꽃밭에서 귀 기울이면 거센 민중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단순히 도시를 장식하기 위한 꽃이 아니다. 모이고 힘을 합치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는 무언의 웅변이다. 흩어지지 말고 하나로 힘을 모아라! 목현천 백일홍한테서 듣는 전언이다.

꽃들의향기 2019.08.28

양재천 백일홍

시골 초가집 장독대에 몇 송이 피어 있으면 잘 어울리는 수수한 꽃이 백일홍이다. 그렇듯 백일홍을 보면 유년을 떠올리게 된다. 서울 강남 지역을 지나며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양재천에 백일홍 꽃밭이 있다. 산책로를 따라 길게 만들어 놓았다. 이 꽃을 보며 누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 한 자락쯤 떠올릴 것이다. 떠나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백일홍이다.

꽃들의향기 2017.10.13

백일홍(3)

인터넷에서 '백일홍'을 검색하면 주로 목백일홍인 배롱나무가 나온다. 초본 백일홍은 그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옛날에는 시골 화단에서 단골 꽃이었지만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 나이 든 세대에게는 향수를 자극하지만 젊은이에게는 촌스럽게 보이는 꽃이기도 하다. 꽃은 피었다 빨리 져야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귀하게 여긴다. 그런데 백일동안 핀다니 애당초 이목을 끌기 어려운 조건이다. 하물며 외모가 가녀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꽃잎은 두텁고 투박하다. 색깔은 지나칠 정도로 원색으로 강렬하다. 은은한 맛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대신에 부담 없이 정겹다. 어쩔 수 없는 이웃집 정겨운 아줌마의 모습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낯선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게 서먹하고 정들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런데 주인집 ..

꽃들의향기 2015.11.07

백일홍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백일홍 꽃밭이 있다. 수녀님들이 제단 장식용으로 쓰기 위해 가꾼 꽃밭이다. 그런데 백일홍 꽃밭을 바라보면 왠지 마음이 푸근하고 편안해진다. 꽃이 깔끔하지 않고 자라는 키도 제각각이지만 멋 내지 않고 수더분한 인상이 마음씨 좋은 옆집 아줌마 같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백일홍은 다른 꽃에 비해 오랫동안 피어있다. 여름꽃이지만 가을이 짙어가는 지금까지도 볼 수 있다. 어떤 때는 “너, 아직도 피어있니?”하고 묻고 싶을 정도이다. 수녀원에서 백일홍을 심은 이유도 아마 이 탓이 아닌가 싶다. 오래 피어있다는 것이 꽃에게는 단점이기도 하다. 물론 사람의 기준이겠지만 그것은 꽃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수명이 짧은 꽃일수록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꽃들의향기 2006.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