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백일홍 꽃밭이 있다. 수녀님들이 제단 장식용으로 쓰기 위해 가꾼 꽃밭이다. 그런데 백일홍 꽃밭을 바라보면 왠지 마음이 푸근하고 편안해진다. 꽃이 깔끔하지 않고 자라는 키도 제각각이지만 멋 내지 않고 수더분한 인상이 마음씨 좋은 옆집 아줌마 같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백일홍은 다른 꽃에 비해 오랫동안 피어있다. 여름꽃이지만 가을이 짙어가는 지금까지도 볼 수 있다. 어떤 때는 “너, 아직도 피어있니?”하고 묻고 싶을 정도이다. 수녀원에서 백일홍을 심은 이유도 아마 이 탓이 아닌가 싶다.
오래 피어있다는 것이 꽃에게는 단점이기도 하다. 물론 사람의 기준이겠지만 그것은 꽃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수명이 짧은 꽃일수록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만큼 귀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치 결정은 본래적이기 보다 희귀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만약 일 년 내내 피어있는 꽃이 있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면 사람들이 그 꽃을 아끼며 화단에 기르려고 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백일홍은 너무 오래 피어있는 탓에 괜히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모든 만남은 생각보다 짧다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 부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지금부터 백일만 산다고 생각하면
삶이 조금은 지혜로워지지 않을까
처음 보아도
낯설지 않은 고향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오는 백일홍
날마다 무지갯빛 편지를 족두리에 얹어
나에게 배달하네
살아있는 동안은 많이 웃고
행복해지라는 말도
늘 잊지 않으면서
- 백일홍 편지 / 이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