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6

긴 싸움이 끝나다

국세청과 벌인 긴 송사가 끝났다. 재작년 여름에 세무서에서 밤골 생활에 대해 중과세를 한다는 통고가 왔으니, 그때로부터 2년이 넘게 걸린 다툼이었다. 세무서에 과세적부심 심사를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했고, 이어서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했으나 역시 기각당했다. 어쩔 수 없이 법원에 소송을 냈고, 1심에서 이겼으나 피고가 항소를 해서 2심까지 갔다. 고등법원에서도 이겨서 끝나는가 했더니 끈질긴 국세청은 대법원에까지 상고를 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가지고 이렇게 악착같이 달라붙을 줄은 예상을 못 했다. 그런데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중에 부과한 세금을 반환하겠다는 연락이 왔고, 빼앗겼던 돈을 되찾을 수 있었다. 졌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그동안 국세심판원과 행정법원, 고등법원을 거치며 여러 번 법정에 출석했..

참살이의꿈 2012.09.25

제일 추웠던 날

오늘 아침은 영하 20도로 떨어졌다. 올겨울 들어 제일 추운 날이었다. 이날 고등법원 항소심 법정에 불려 나갔다. 마음마저 오슬오슬 떨렸다. 바로 옆에는 가정법원이 있었다. 가정법원은 대부분이 이혼소송이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그쪽 법정 구경도 했다. 특이하게 거의 모두가 다문화가정과 관련되어 있었다. 법원에 들락거리는 사람, 어느 하나 사연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사는 게 뭔지, 사건 당사자가 되어서 법정에 출두해 느껴보는 심정은 착잡하고 묘했다. 벌써 3년째다. 글쎄, 지금에 이르러 내가 느낀 건 연민이다. 높은 단상에 앉아 있는 판사도, 억울해하는 항소인도, 그리고 나 자신도 불쌍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무엇을 변론하고, 누가 누구를 판단한단 말인가. 거기서 거대하고 막막한 시스템의 벽을 느낀다. 그..

사진속일상 2012.02.02

한 장의 사진(16)

무슨 팔자인지 법원을 자주 들락거린다. 생소했던 풍경도 익숙해지고 있다. 법원 구내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도 이젠 즐기는 편이다. 사람들의 딱딱하고 근엄한 표정도 여유 있게 살피게 되었다. 지나는 길에 가정법원이 있는데 심각한 얼굴의 부부들이 들고난다. 어제는 건물 귀퉁이에서 한 부부가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가 들고 있는 서류 봉투에서 종이를 빼내려 하고 있었고, 남자는 뺏기지 않으려고 밀고 당기는 중이었다. 옆을 지나가는데 남자의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용없어. 이젠 다 끝났어.” 얼마 전에는 구내에서 지율스님도 만났다. 4대강에 관련된 소송에서 이겼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아마 그것 때문에 오신 것 같다. 나에게 법정 경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군대 있을 때 ..

길위의단상 2011.07.13

진인사대천명

쉰아홉이 되는 올해 2011년은 참 별난 해다. 아홉수 치다꺼리를 하느라 그러는지 큰일들이 연신 생기고 있다. 퇴직을 했고, 탈서울의 이사를 했고, 딸 둘을 한꺼번에 출가를 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오늘은 법정에 섰다. 국가기관을 상대로 하는 송사의 원고로 출석한 것이다. 앞으로도 한두 차례 더 재판이 진행되어야 한다. 가슴 아픈 여주 생활의 여파가 지금까지 날 괴롭히고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훗날 너무 후회할 것 같아 세무서장을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이것은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나에게는 정신적 통과의례로 필요한 절차다. 사람들은 승산이 없는 싸움일 거라고 말렸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을 꼭 한 번 물어보고 싶었다. 법원마저 노, 라고 한다면 그때는 대한민국 법 적용의 현실을 받아들..

길위의단상 2011.06.14

인연

쉽게 체념하게 된다. 좋게 말하면 너그러워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생기는 변화다. 오래 살게 되면 궂은일들을 많이 겪어서인지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감각이 무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과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 때문에 애간장을 태우는 일도 줄어든다.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예전에는 어떤 식으로든 맺어지려고 안절부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편하게 생각한다.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인연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고민하고 애 쓴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만사의 변화를 인연으로 읽으려 한다. 살면서 경험하는 사건들이 우연으로 일어나는 것인지, 인연으로 생기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연으로 생각하..

참살이의꿈 2010.10.01

법원 판결은 정당하다

지난 연말부터 어제까지 의미 있는 법원 판결이 잇달아 이어졌다. 무리하게 보였던 검찰의 기소가 법원으로부터 정당한 판단을 받은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이나 검찰측에서는 과격한 말로 비난을 하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 몇 주 사이에 시국이나 언론에 관계된 주요 판결만 해도 다섯 가지가 된다. 1. 일제고사 거부 교사에 대한 파면 취소 결정 2. 용산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 기록 공개 결정 3. 강기갑 의원의 공무집행방해죄 무죄 4. 시국선언교사 무죄 5. 광우병에 대한 'PD 수첩' 보도 내용 무죄 작년 교사의 시국선언에 대해서 정부는 여러가지로 협박을 하면서 서명하는 것을 방해했다. 그들이 내건이유는공직자의 정치활동 금지와 복종의 의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했다는 것..

길위의단상 2010.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