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4

부채

친구한테서 부채를 선물 받았다. 서예가 취미인 친구라 손수 붓글씨를 적었다. 좋아하는 글귀가 있느냐고 물어왔을 때 아무 거나 괜찮다 했더니 공자님 말씀을 넣어 주었다. 良藥苦口利於病 忠言逆耳利於行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성스런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하는 데는 이롭다. 요즘은 이런 부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드물지만 나한테는 딱 맞는 용도가 있다. 바둑 둘 때다. 한 손으로 살랑살랑 부채를 흔들며 멋스레 바둑을 두고 싶다. 바둑 한 판이 주는 교훈이 이 구절의 의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진속일상 2016.07.26

포장마차 국수집 주인의 셈법 / 배한봉

바람 몹시 찬 밤에 포장마차 국수집에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예닐곱쯤 되는 딸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늙수그레한 주인이 한 그릇 국수를 내왔는데 넘칠 듯 수북하다 아이가 배불리 먹고 젓가락을 놓자 남자는 허겁지겁 남은 면발과 주인이 덤으로 얹어준 국수까지 국물도 남김없이 시원하게 먹는다 기왕 선심 쓸 일이면 두 그릇을 내놓지 왜 한 그릇이냐 묻자 주인은, 그게 그거라 할 수 있지만 그러면 그 사람이 한 그릇 값 내고 한 그릇은 얻어먹는 것이 되니 그럴 수야 없지 않느냐 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 포장마차 주인의 셈법이 좋아 나는 한참이나 푸른 달을 보며 웃는다 바람은 몹시 차지만 하나도 춥지 않다 - 포장마차 국수집 주인의 셈법 / 배한봉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누군가를 도울 때에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

시읽는기쁨 2014.01.10

세 가지 선물 / 박노해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은 단 세 가지 풀무로 달궈 만든 단순한 호미 하나 두 발에 꼭 맞는 단단한 신발 하나 편안하고 오래된 단아한 의자 하나 나는 그 호미로 내가 먹을 걸 일구리라 그 신발을 신고 발목이 시리도록 길을 걷고 그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저녁노을을 보고 때로 멀리서 찾아오는 벗들과 담소하며 더 많은 시간을 침묵하며 미소 지으리라 그리하여 상처 많은 내 인생에 단 한 마디를 선물하리니 이만하면 넉넉하다 - 세 가지 선물 / 박노해 요사이 내 마음도 이렇다. 호미와 신발과 의자로 상징되는 삶을 그리고 있다. 적당한 노동, 그리고 신발과 의자가 뜻하는 동(動)과 정(靜)의 조화로운 삶을 희망한다. 그래서 마음은 늘 전원에서의 삶을 꿈꾼다. 땅과 나무와 풀의 벗들과 가까이서 살고 싶다. 내가 ..

시읽는기쁨 2012.06.11

산야초차 선물

몇 달 전에 `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 이야기`라는 책을 샀다. 책을 구매한 사람중에서 추첨을 해서 저자가 직접 덖은 산야초차를 선물한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냥 잊고 지냈다. 그런데 한참 뒤에 당첨되었다는 연락이 왔고, 작은 산야초차 한 봉지가 배달되어 왔다. 뚜껑을 여니 연잎차라고 적혀 있는데, 달여 마시거나 녹차처럼 여러번 우려 마시라고 되어있다. 작은 선물이지만 무척 감사하고 기뻤다. 지리산 어딘가에서 자라던 연잎이 누군가의 정성에 의해 이렇게 만들어져서 내 앞에 놓여있다. 내가 이 차를 마시는 것은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과 동시에 지리산의 정기를 내 속에 모시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전문희님은 특이한 분이다. 서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지내다가 어머니의 암 치료를 위해서고향으로 ..

사진속일상 2004.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