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포장마차 국수집 주인의 셈법 / 배한봉

샌. 2014. 1. 10. 09:33

바람 몹시 찬 밤에

포장마차 국수집에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예닐곱쯤 되는 딸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늙수그레한 주인이 한 그릇 국수를 내왔는데

넘칠 듯 수북하다

 

아이가 배불리 먹고 젓가락을 놓자 남자는

허겁지겁 남은 면발과 주인이 덤으로 얹어준 국수까지

국물도 남김없이 시원하게 먹는다

 

기왕 선심 쓸 일이면

두 그릇을 내놓지 왜 한 그릇이냐 묻자 주인은,

그게 그거라 할 수 있지만 그러면

그 사람이 한 그릇 값 내고 한 그릇은

얻어먹는 것이 되니 그럴 수야 없지 않느냐 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 포장마차 주인의 셈법이 좋아

나는 한참이나 푸른 달을 보며 웃는다

바람은 몹시 차지만 하나도 춥지 않다

 

- 포장마차 국수집 주인의 셈법 / 배한봉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누군가를 도울 때에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게 아닐까.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어느 분이 자신의 선물하는 법을 얘기했다. 선물을 받는 쪽 입장이 불편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직장을 잃은 후배에게 용돈을 건네줄 때는 봉투에 이렇게 쓴다고 한다. '00는 술값이 필요하다.' 밥 사 먹을 돈조차 없는 가난한 학생에게는 '00는 책값이 필요하다'라고 쓴 봉투를 쥐여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받는 쪽에서 부담감이 덜해진다고 말했다.

 

포장마차 국수집 주인의 셈법이 따스하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타자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같이 가슴 아파하는 마음이 우리 공동체를 훈훈하게 한다. 세상이 살벌하고 덜떨어진 인간이 많아도 인간 본성에 내재한 사랑의 힘을 나는 믿는다. 내 삶의 셈법은 어떠해야 하는지 이 추운 겨울 아침에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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