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면 나는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착하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요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인적 드문 소로길 스적스적 걸어
날이 저무는 일
비 오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으로 골똘히 서 있기도 하는 일
다 공부라고 하면 좀 낫지요마는
- 별사(別辭) / 김사인
신년시라고 꼭 희망과 꿈을 노래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요. 보신각 앞에 모여 환호하고, 해돋이를 보기 위해 부푼 가슴 펄럭이며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만 이 세상에 있는 건 아니겠지요. 사실 그래요. 달라지는 건 없어요. 새해가 되어도 비 오고 바람 불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찾아오겠지요. 슬픈 시를 신년 벽두에 놓았다고 날 나무라진 말아요. '다 공부지요' 라는 말이 참 좋네요. 당신도 그러길 바래요. 하늘 마음과 통하면 감내치 못할 일이 무에 있겠어요. 어쩌면 따스한 손이 내려와 착하다고 당신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겠지요. 그래요, 다 공부지요. 공부 아닌 게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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