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3

들리는 소리 / 원재길

1 바로 아래층에서 전기 재봉틀 건물 들어 올리며 옷 짓는 소리 목공소 전기톱 통나무 써는 소리 카센터 자동으로 볼트 박는 소리 굉음에 하늘 돌아보니 불빛 번득이며 먹구름 밑 낮게 나는 헬리콥터 어서 지나가면 좋겠는데 아까부터 시동 걸려 골목에 버티고 선 트럭 2 너는 모든 침묵을 소음의 자식이라 여겨라 모든 소음은 침묵의 아비로다 사람의 모든 색色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려 애써라 너는 사람이며 색은 소리이다 너 자신도 색임을 이해하여 소리인 사람과 섞여 살아라 그 소리에 옷 얻어 입고 가구 받아 들이고 바쁜 날 천리마 얻어 타고 두 눈은 멀리 가는 빛 얻어 번쩍일 때 너는 언제까지나 너답게 살아라 사람이 내는 모든 소리를 사람으로 대접하라 - 들리는 소리 / 원재길 중학교 2학년 때 공부에 전념하라고 아..

시읽는기쁨 2013.10.01

소리에 둔해지기

우리 나이가 되면 몸의 기능이 저하되는 걸 실감한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하나 예외가 있다. 청력만은 젊었을 때와 전혀 차이가 없다. 오히려 더 예민해지는 것 같다. 어디서 들은 얘긴데, 늙어서도 계속 자라는 것이 귀라고 한다. 그래서 귀가 큰 사람이 장수한다는 말도 생겼는가 보다. 귀는 외형뿐만 아니라 성능에서도 제일 오래 버티는 기관인지 모른다. 100세 넘게 사셨던 외할머니도 마지막 몇 년을 빼고는 청력만은 정상이셨다. 옆에서 소곤소곤하는 얘기도 들으시고는 참견을 하셨다. 그게 싫었던 어머니는 어떻게 젊은 사람보다 귀가 더 밝느냐고 혀를 찼다. 귀 때문에 외할머니는 지청구를 많이 들으셨다. 늙어서는 못 들은 척해야 할 경우가 많은데 귀가 밝다는 건 축복이기보다는 성가신 일이다. 상하좌우로 다..

길위의단상 2013.09.26

그 소리가 그립다

가을걷이로 한창 바쁜 농촌이지만 마을 안은 조용하다. 벼 수확 작업이 대부분 기계의 힘으로 다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벼를 베는 일에서부터 탈곡하고 나르는 작업이 밖에서 다 이루어진다. 집으로 들어오는 벼는 없고 직접 건조장이나 도로 위로 옮겨진다. 예전에 이 무렵에는 온 동네가 북적거렸다. 모든 일이 오직 사람의 노동력만으로 이루어졌다. 낫으로 벤 벼를 논에서 말린 다음 지게나 달구지를 이용해서 볏단을 집으로 옮겼다. 딸랑 딸랑 목에 달린 종을 울리며 쉼 없이 벼를 실어 나르던 우리 집 황소가 기억난다. 저녁이 되면 볏가래를 쌓는다. 등불을 여기 저기 켜놓고 마치 탑이 쌓아지듯 하늘로 올라간다. 볏가래는 가운데가 볼록한 항아리 모양으로 생겼다. 높이가 점점 올라갈수록 밑에서 볏단을 던져주는 일꾼들의 숨소..

길위의단상 2004.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