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7

지나가고 떠나가고 / 이태수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고 자동차들이 지나간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하루가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도 지나가고 또 한 해가 지나간다. 꿈 많던 시절이 지나가고 안 돌아올 것들이 줄줄이 지나간다. 물같이, 쏜살처럼, 떼 지어 지나간다. 떠나간다. 나뭇잎들이 나무를 떠나고 물고기들이 물을 떠난다. 사람들이 사람을 떠나고 강물이 강을 떠난다. 미련들이 미련을 떠나고 구름들이 하늘을 떠난다. 너도 기어이 나를 떠나고 못 돌아올 것들이 영영 떠나간다. 허공 깊숙이, 아득히, 죄다 떠나간다. 비우고 지우고 내려놓는다. 나의 이 낮은 감사의 기도는 마침내 환하다. 적막 속에 따뜻한 불꽃으로 타오른다. - 지나가고 떠나가고 / 이태수 다사다난(多事多難) - 연말이면 상투적으로 쓰지만, 올해는 이 말이 정말 실감 난다..

시읽는기쁨 2020.12.31

흐르는 시간

세월 참 빠르구나, 라고 의례껏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은 연말이다. 육십이 지나면 고속도로를 탄 것 같다지만, 사실 그다지 실감을 못한다. 바삐 지내는 사람과 달리 주로 집에만 있다 보니 시간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다. 이것도 나 같은 생활자의 느긋함이다. 시끄러운 송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창문으로 흐르는 불빛이 길었다. 어쨌든 한 해는 저물고 있고, 저 앞 어둠 속에서 새해가 힘차게 다가오고 있다.

사진속일상 2017.12.15

2011년을 보내며

2011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연말이 되면 흔히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쓰는데 바로 올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큰일들이 한 해에 집중된 인생 대변화의 때였다. 묘하게도 나이 끝이 아홉이 되는 해에는 쓰나미가 몰려온다. 10년의 주기 중에서도 올해의 진폭이 가장 컸다. 올초에 35년 직장 생활에서 떠났다. 정년까지는 4년 더 남았지만 명퇴를 택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잘한 선택이었다. 고백하건대 늘 사람과 접촉해야 하는 직업은 나에게 항상 무거운 짐이었다. 그 짐을 벗으니 날아갈 듯 가볍다. 퇴직 후 만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내 표정이 밝아졌다고 말한다. 퇴직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지만 기본 생활은 달라진 게 없다. 일에 충실하지 않은 게 도리어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제일 중요한..

길위의단상 2011.12.31

2009년의 마지막 석양과 블루 문

저무는 2009 년의 태양을 집에서 지켜보다. 안녕~~~, 2009! 해가 지면서 동쪽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오르다(정확히는 어제가 보름이었다). 이 달을 서양에서는 '블루 문'(Blue Moon)이라 부른다. 지난 1일이 보름이었는데 같은 달에 두 번 보름달이 뜬 것이다. 그럴 때 두 번째 뜨는 달을 블루 문이라고 한다. 자주 보이는 현상은 아니고 대략 2.7년에 한 번씩 일어난다. 이번처럼 새해 전야에 생기는 블루 문은 20년 만이라고 한다. 블루라고 해서 달이 푸른색을 띄는 것은 아니고, 중세 유럽에서는 한 달에 두 번 뜨는 보름달을 괴이하게 여겨 부정적으로 본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어찌 되었든 재미있는 현상이다. 1년 가까이 끌어서 마음을 아프게 했던 용산 참사도 해결되었고, 오늘은 일제고사로 해직..

사진속일상 2009.12.31

내 삶의 북극성

연말이라고 몇 차례 술자리에 참석하고 마음을 번거럽게 놓았더니 내상을 입었다. 장이 약해서 평시에 늘 조심하지만 이런 때는 꼭 탈이 난다. 며칠째 집에서는 죽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어제 직원 송년회에서도 알콜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금년에는 소위 3D 중의 하나라는 업무를 자청해서 맡아 나름대로는 열심히 일했다. 동료들로부터는 이젠 뒤로 물러서 편하게 지내라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그래선지 오랫만에 넓은 방에 있는 사람에게서 고생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불가항력으로 내년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예스를 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는지 지금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한 해의 일을 마감하고 보니 개운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다. ..

사진속일상 2006.12.29

2005년의 끝 날

한해의 끝 날이어선지 마음이 허전하다. 지난 한해 특별히 잘못 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래도 왠지 아쉽고 쓸쓸하다. 해가 바뀌고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지는 것을 우리말로는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보통 먹는다는 것은 허기가 채워진다는 뜻인데,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도리어 더 허기지고 갈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신문에 ‘먹는다’는 표현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같은 동양문화권인데도 중국 사람들은 나이를 첨(添)한다고 하고, 일본 사람들은 도루(取)한다고 하는데 유독 우리말이 먹는다고 한다. 이 지구상에는 3000종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 나이를 밥처럼 먹는다고 하는 민족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 같다..

사진속일상 2005.12.31

철수

밭의 비닐을 걷어내서 정리하고, 모아두었던 콩대를 불태우고, 추위에 약한 나무 줄기에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보일러와 수도 배관에 있던 물을 모두 빼냈습니다. 이것으로 올 한 해 터에서의 생활이 마감되었습니다. 특히 보일러와 수도관의 물을 빼내는 작업은 콤프레셔를 사용해서 인부 두 명이 거의 세 시간 가까이 일해야 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내년 봄에 다시 물을 채워주는 것까지 해서26만 원이 들었습니다. 지난 두 해는 내려가 있지 않더라도 보일러을 겨울 내내 가동시키며 동파를 방지했지만 마당에 노출되어 있는 수도 폄프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보온을 해도 두 번 다 얼어터져서 봄에는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아예 물을 모두 빼버린 것입니다. 이번 겨울은 완전히 터에서 철수를 하려..

참살이의꿈 200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