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고
자동차들이 지나간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하루가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도 지나가고
또 한 해가 지나간다.
꿈 많던 시절이 지나가고
안 돌아올 것들이 줄줄이 지나간다.
물같이, 쏜살처럼, 떼 지어 지나간다.
떠나간다. 나뭇잎들이 나무를 떠나고
물고기들이 물을 떠난다.
사람들이 사람을 떠나고
강물이 강을 떠난다. 미련들이 미련을 떠나고
구름들이 하늘을 떠난다.
너도 기어이 나를 떠나고
못 돌아올 것들이 영영 떠나간다.
허공 깊숙이, 아득히, 죄다 떠나간다.
비우고 지우고 내려놓는다.
나의 이 낮은 감사의 기도는
마침내 환하다.
적막 속에 따뜻한 불꽃으로 타오른다.
- 지나가고 떠나가고 / 이태수
다사다난(多事多難) - 연말이면 상투적으로 쓰지만, 올해는 이 말이 정말 실감 난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일상이 송두리째 변했고, 정치판에서는 검찰 개혁으로 나라가 둘로 갈라져 시끄러웠다. 그 와중에 아파트와 주식 시장에서는 돈바람의 광풍이 불었다. 여느 해가 다 그랬지만, 있는 사람은 띵까띵까 춤추고, 없는 사람은 더욱더 팍팍해진 2020년이었다.
그러나 인간사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모든 것은 지나가고 떠나간다. 빨리 떠나가길 바라는 것도, 내 옆에 있길 원하는 것도, 시간의 강물 따라 흘러간다. 안 돌아올 것들이 줄줄이 지나가고, 못 돌아올 것들이 영영 떠나간다. 나 역시 흘러가는 것 중 하나다. 우리는 모두 지구를 스쳐 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안달하거나 미련 둘 일이 어디 있을까. 시인처럼 비우고 지우고 내려놓길 기도한다. 그래서 마침내 환해지길, 흘러오는 2021년에 걸어보는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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