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철수

샌. 2005. 11. 27. 14:07

밭의 비닐을 걷어내서 정리하고, 모아두었던 콩대를 불태우고, 추위에 약한 나무 줄기에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보일러와 수도 배관에 있던 물을 모두 빼냈습니다. 이것으로 올 한 해 터에서의 생활이 마감되었습니다.

 

특히 보일러와 수도관의 물을 빼내는 작업은 콤프레셔를 사용해서 인부 두 명이 거의 세 시간 가까이 일해야 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내년 봄에 다시 물을 채워주는 것까지 해서26만 원이 들었습니다.

 

지난 두 해는 내려가 있지 않더라도 보일러을 겨울 내내 가동시키며 동파를 방지했지만 마당에 노출되어 있는 수도 폄프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보온을 해도 두 번 다 얼어터져서 봄에는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아예 물을 모두 빼버린 것입니다. 이번 겨울은 완전히 터에서 철수를 하려 합니다.

 

되돌아보니 열심히 일도 했지만 번민도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처분하고 다시 온전히 도시로 돌아갈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어떻게든 버텨야지 하는 갈등이 열두 번도 넘게들었습니다.

 

터에 집을 짓고 3 년차 되는 해, 누구 말대로 이젠 신선도도 떨어지고 새로운 자극도 없는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생활이니 지루해질 만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의 부풀었던 꿈도 이젠 거의 사그러졌습니다. 새로움이 아니라 평범함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아직 눈이 트이지 않은 모양입니다. 똑 같은 일이더라도 어떤 때는 희망과 도전이었는데, 어떤 때는 짐이 됩니다.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텅 빈 밖을 내다보는 마음이 허전합니다. 더구나 앞에 새로 집을 짓는 사람 때문에 다시 이웃들간에 마찰이 생기고 큰 소리가 나는 광경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참으로 힘들고 피곤합니다. 앞으로의 과제 역시 그런 종류일 것입니다.

 

이제 겨울 석 달 동안은 터에서 마음을 떼어도 되겠습니다. 그동안에 잠시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도록 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일차원적인 생각에 머물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세상의 어떤 단순해 보이는 현상들 속에도 늘 다차원의 측면이 존재하고 있음을 봅니다.

 

내 머리 속은 복잡하지만 뒷산은 모든 것을 내놓고 텅 빈마치 묵언(默言)에 들어가려는 수도자의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따라 배워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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