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김장을 하다

샌. 2005. 11. 15. 14:33

김장을 했습니다. 터에 심은 배추가 백 포기가 넘어서 지지난 주에 반 정도를 하고 이번에 남아있던 배추를 마저 뽑아 김장을 끝냈습니다.

 

올해는 온전히 직접 가꾼 배추, 무, 파로 김장을 했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접이나 되는 배추로 김장을 담근 것도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미리 했던 것은 이웃에 많이 나누어 주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이 김치냉장고로 하나 가득 찼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올해 산 김치냉장고 덕을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날씨 때문에 아직 김장을 못했을 것입니다. 또 어느 해는 땅에 묻었다가 늦게 꺼내는 바람에 너무 시어져서 제 맛을 즐기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김치냉장고는 그럴 걱정이 없어서 좋습니다. 문명의 이기의 편리함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고향에 내려가 형제들끼리 공동으로 김장을 하고 나누어 가져 왔지만, 올해는 우리 터에서 난 배추로 아내와 둘이서 했다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하니 우리 입맛에 맞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끌벅적한 잔칫집 같은 분위기를 잃어 아쉽기도 합니다. 양념 맛이 어떠냐고 자주 불려가고, 짜니 싱겁니로 시끄럽기도 하고, 금방 무쳐서 나온 김치로 삶은 돼지고기를 싸서 소주잔도 돌리고 하는 맛이 없어졌습니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아내의 지청구를 듣는 일입니다. 다른 집안 남자들은 김장을 할 때면 다들 아내를 도와준다는데 당신은 왜 꼼짝도 않느냐는 타박을 여러 번 듣는 일입니다. 이것은 연례행사로 듣는 잔소리입니다. 이번에는 저도 배추를 뽑아주고 날라주고, 무거운 것을 들어주는 심부름을 했는데도 아내에게는 별로 성에 차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런 아내의 타박도 즐거이 들어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아내 또한 그다지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김장을 하는 일이 주는 뭔가 풍요로운 느낌 탓일 것입니다.



예전에는 김장을 하고 연탄을 들여놓으면 겨울 준비가 끝났다고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그러나 대가족의 김치를 담그는 일이 주부들에게는 크게 신경 쓰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대부분 연탄도 사라졌고 김장을 하지 않는 집도 많아졌지만, 대신에 김장을 하는 과정의 풍성함과 심리적 만족감마저 상실해 버린 것은 아닌지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별로 한 일은 없지만 여러 통에 가득 담긴 김장 김치를 보니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왠지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더욱이나 직접 기른 배추여서 더욱 뿌듯합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이밥에 이 김치 하나만 있어도 올 겨울은 맛있게 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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