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2

송시열의 자취를 찾아서

작년 이맘 때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자취를 찾아 화양구곡을 중심으로 한 괴산 지역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송시열의 출생지인 대전과 논산 지역으로 선생의 흔적을 찾아 보았다. 이곳은 송시열과 윤증(尹拯, 1629~1714)이 대립한 회니시비(懷尼是非)의 현장이기도 하다. 경떠회 회원 3명과 함께 했다. 윤증의 부친인 윤선거(1610~1669)와 송시열은 윤휴의 경전 해석 문제로 사이가 벌어진다. 윤선거와 윤증 부자가 같은 서인인 송시열에 동조하지 않고 남인인 윤휴를 감싼 것이다. 윤선거는 주자 해석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데서 벗어나 현실에 바탕을 둔 정치와 사상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 바람에 스승과 제자는 원수로 갈라지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시키는 요인이 됐다. 단풍철 주말이라 고속..

사진속일상 2013.10.28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한국사에서 송시열(宋時烈, 1607~1689)만큼 논란 많은 인물도 드물 것이다. 송시열은 조선시대 주자학을 신봉한 유학자면서 정치가였다. 치열했던 당쟁의 시대에 노론의 영수로 정국을 좌지우지했고 결국은 그것 때문에 숙종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덕일 선생이 쓴 는 송시열 신화의 반대편에서 그를 파악하려는 시도다. 지은이의 결론은 책의 '나가는 글'에 잘 나와 있다. 송시열은 사대부 계급의 이익과 노론의 당론을 지키는 데 목숨을 건 사람이었다. 그의 당인 노론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정권을 잡았으나 이는 백성들의 나라가 아니라 그들의 나라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 나오는 공자의 말로 송시열의 인물을 평한다. "군자는 두루 통하고 편벽되지 않지만, 소인은 편벽되고 두루 통하지 못한다[子曰 君子 周而不..

읽고본느낌 2012.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