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자취를 찾아 화양구곡을 중심으로 한 괴산 지역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송시열의 출생지인 대전과 논산 지역으로 선생의 흔적을 찾아 보았다. 이곳은 송시열과 윤증(尹拯, 1629~1714)이 대립한 회니시비(懷尼是非)의 현장이기도 하다. 경떠회 회원 3명과 함께 했다.
윤증의 부친인 윤선거(1610~1669)와 송시열은 윤휴의 경전 해석 문제로 사이가 벌어진다. 윤선거와 윤증 부자가 같은 서인인 송시열에 동조하지 않고 남인인 윤휴를 감싼 것이다. 윤선거는 주자 해석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데서 벗어나 현실에 바탕을 둔 정치와 사상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 바람에 스승과 제자는 원수로 갈라지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시키는 요인이 됐다.
단풍철 주말이라 고속도로는 많이 막혔다. 오후 늦게서야 찾은 곳이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죽림서원(竹林書院)이었다.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름 그대로 서원 뒤는 대나무 숲이었다.
죽림서원 옆에는 임리정(臨履亭)이 있다. 1626년에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김장생이 세웠다. 이이, 김장생, 송시열은 기호학파의 중심 인물로, 송시열도 스승이 강학하던 임리정 가까운 곳에 팔괘정을 짓고 제자를 길렀다.
금강변에도 잠시 들렀다. 서쪽으로 기운 해를 받아 억새가 환하게 빛났다.
궐리사(闕里祠)도 1687년에 송시열이 건립을 추진하고, 1716년에 그의 제자들이 세운 것이다. 공자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명재 윤증의 고택이었다.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데 주변 풍경과 조화롭게 어울린 고택의 분위기가 무척 편안했다. 뒷산의 소나무 숲과 여러 채의 한옥, 그리고 연못을 중심으로 한 정원과 장독대가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었다. 안내판에는 고택의 구조에 대한 설명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 취해 세세히 살펴보지는 못했다. 한옥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명재 고택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윤증은 노론 입장에서는 스승을 배신한 인물이다. 당시 조선의 지배 철학인 주자학의 입장 차이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고 윤증은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그 뒤 역사는 노론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소론이 지향하는 정신은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필요하다. 원리주의에 맞서는 소통과 관용의 정신이랄까, 붕당정치 밑바닥에 흐르는 정치철학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 시내 모텔에서 일박을 하고 가양동에 있는 우암사적공원을 찾아갔다. 이곳에는 송시열이 제자를 가르치던 남간정사(南澗精舍)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수리중이라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우암자료관에서는 해설사분의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이 도움이 되었다.
공원 인근에 있는 송시열 고택에 들렀다가 동학사로 갔다. 1665년 9월에 동학사에서 송시열과 윤선거가 회동하며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했다. 이때 윤선거는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규정한 송시열에 대립하며 윤휴를 변호했다.
일요일에 가을 단풍 축제와 겹쳐 동학사로 가는 길은 인산인해였다. 원래는 동학사에서 갑사로 걸어 넘어가려 했으나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동학사에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32년 만에 찾은 동학사는 절은 별로 달라진 것 없었는데, 사하촌의 음식점 거리만 북적대고 복잡해졌다. 추갑사(秋甲寺)의 갑사를 못 본 게 아쉬웠다.
* 여행일; 2013. 10. 26 ~ 27
* 여행 경로; 죽림서원 - 임리정 - 궐리사 - 명재고택 - 우암사적공원 - 우암고택 - 동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