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7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한밤중에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머리가 복잡해졌다. 요사이는 '산다는 게 뭔지'를 중얼거리는 일이 잦았다. 머리맡에 놓인 책을 들어 깜깜한 시간을 때웠다. 에 나오는 글로 위안되는 바가 컸다. "역경에 부딪쳤을 때 '내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이 닥치는가?' 하고 의기소침할 일은 아니다. 그런 때일수록 '이제야 성숙할 기회를 맞았구나' 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편을 선택하느냐가 곧 자기의 미래를 좌우한다. 결정권은 바로 지금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 "그러기에 자기를 돌아보라 하는 것이니 현실의 고(苦)나 인과(因果) 등은 그대로 수련 과정인 셈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치면 오히려 나쁜 공기와 먼지 그리고 불결한 것들을 다 청소시켜주니, 현실의 고..

참살이의꿈 2014.04.18

동해바다 / 신경림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작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 동해바다 / 신경림 타인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내 모습이 부끄럽다. 나이를 헛먹고 있다. 늙어가면서 제일 괴로운 게 옹졸해지는 나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를 만나니 안도현의 '바다가 푸른 이유'라는 글이 생각난다. 스스로 채찍을 들 줄 모른다면 하느님의 매라도 기다려야 마땅하다. ..

시읽는기쁨 2014.02.27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여도 바람이 멈추지 않고

공자가 제나라로 가는 도중에 곡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매우 슬펐다. 공자가 하인에게 말했다. "이 곡소리는 슬프기는 하지만 누군가 죽어 상을 당한 슬픔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나아가니 어떤 사람이 낫과 새끼줄을 들고 있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다가가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제 이름은 구오자(丘吾子)입니다." "당신은 지금 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슬프게 곡을 하고 있소?" 공자의 질문에 구오자가 대답했다. "제게는 살아감에 있어 세 가지의 실책이 있었습니다. 이를 오늘에야 뒤늦게 깨달았으니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때문에 이를 슬퍼하여 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자는 다시 곡을 시작하는 구오자를 향해 물었다. "세 가지의 실책이라니요. 내게 숨김없이 말해주시기..

참살이의꿈 2012.08.30

우환이 우리를 살린다

'生于憂患 死于安樂', 어느 음식점 벽에 걸린 액자에서 이 글귀를 보았다.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주인장의 좌우명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환이 우리를 살리고, 안락이 우리를 죽인다', 음미할수록 나 자신을 채찍질하게 되는 내용이다. 편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늘 안락하기를 바라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삶이란 그렇지 않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안락을 바랄수록 우환이 반드시 따르는 법이다. 안락과 우환은 파도가 밀려오듯 교대로 찾아온다. 그래서 옛사람은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다. 인생살이에서 어쩔 수 없는 게 우환이라면, 우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안락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우환을 긍정적으로 맞으며 극복해 나가는 데 인간 정신의 위대..

참살이의꿈 2012.01.05

등잔 / 신달자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 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게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줌 흘리고 불을 켜보니 처음엔 당혹한 듯 눈을 가리다가 이내 발끝까지 저린 황홀한 불빛 아 불을 당기면 불이 켜지는 아직은 여자인 그 몸 - 등잔 / 신달자 시인이 쓴 수필집 를 읽고 가슴이 아렸다. 남편의 뇌졸중, 24년 동안의 병수발, 낙상으로 쓰러진 시어머니 간병 9년, 본인의 유방암 투병 등, 운명이 어찌 이렇게 가혹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시인은 스스로의 표현대로 바보처럼 그 모든 시련을 감내하고 극복했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시읽는기쁨 2010.09.14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고향으로 내려가는 설날 귀향길에 올해는 톨게이트에서시낭송 CD를 나누어주었다. 솔직히 4대강이나 세종시 홍보물을 받으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였다. 덕분에 시와 함께 하는 고향길이 되었다. 아는 시가 나오면 반가웠고, 더구나 시인의 육성으로 들으니 더욱 좋았다. 가슴이 울컥해지는 시가 몇 편 있었는데 이 시도 그중의 하나였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

시읽는기쁨 2010.02.15

3월의 함박눈

봄이 되었지만 날씨는 심술을 부리고 있다. 해가 비치다가 느닷없이 함박눈이 쏟아진다. 3월이 되니 장농으로 들어간 겨울옷을 다시 꺼내게 된다. 창밖으로 함박눈이 내리건만 마음이 바쁘니 즐길 여유가 없다. 앞으로 신경쓰고 감당해야 할 업무가 무겁다. 내 뜻과 달리 움직이는 체제 안에서 나는 방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석달 전의 선택을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취소하고 싶다. 불화를 겪더라도 현장에 적극 참여하느냐, 아니면 외면하고 내 마음의 평화를 지키느냐는 살면서 늘 부딪치게 되는 갈등의 하나이다. 내면에서는 후자를 선호하지만 봉급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그것 또한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앞에 나서는 길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내 체질은 아닌 것 같다. 이래저래 불편한 것은 마..

사진속일상 2007.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