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 3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

이덕무 선생의 소품 글을 보다가 만난 구절이다. 에 실린 원문은 이렇다. 眉宇間 隱然帶出澹沱水平遠山氣色 方可與語雅致 而胷中無錢癖 얼굴에 은근하게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과는 더불어 고상하고 우아한 운치를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의 가슴 속에는 재물을 탐하는 속물근성이 없다.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 주변에서 과연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선비 정신이 살아 있던 옛날에는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각자의 욕망 충족을 위해 허기지듯 내달리는 현대 자본주의 인간 군상들에게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리라. 혹 있지만 내가 못 알아봤을 수도 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일 테니까. 선생은 재물을 탐하는 속물근성에서 벗어난 사람의 얼굴을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띠고 있다고 했다. ..

참살이의꿈 2020.06.08

문장의 온도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선생은 별명이 간서치(看書痴)였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이다. 가난한 서얼 출신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학문을 갈고닦았다. 북학파 실학자로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활약한 최고의 독서가며 문장가였다. 그는 성리학적 글쓰기를 지양하고 소소한 일상과 주변에서 관찰되는 사물에 집중한다.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을 안에 숨은 아름다움을 서정적인 문장으로 그려낸다. 책을 좋아했지만 글자에만 매몰되지 않고 일상의 살아있는 현상들에서 세상의 원리를 발견한다. 는 이덕무의 와 에서 뽑은 글을 모은 책이다. 한정주 선생이 엮고 옮겼다. 두 책 모두 이덕무가 20대 때 쓴 글로 그만의 특유한 감성과 사유가 묻어 있다. 조선 시대 때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신..

읽고본느낌 2020.06.06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사람들 틈에서 살지만 사람이 그립다. ..

시읽는기쁨 2004.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