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2

책 읽는 소리

나는 할아버지로부터 유별난 사랑을 받았다. 그 시절에 일흔이 되어서 첫 손자를 봤으니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이 오죽했겠는가.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였던 것 같다. 그래서 버릇없이 자랐다 해도 할 말이 없다. 할아버지 수염을 잡고 "이랴 이랴" 하면, 할아버지는 엉금엉금 기면서 내가 끄는 대로 따라다니셨다. 수염이 뽑혀도 그저 좋아라 하시며, 손자를 위해서라면 어떤 악역이라도 마다치 않으셨다. 동네 사람들이 희한한 구경거리가 났다고 모여들었다 한다. 사랑방에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자주 놀러 오셨다.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깨우쳤을 때다. 할아버지는 사랑방으로 나를 부르시고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또래보다 앞서 글자를 익힌 손자를 자랑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동갑내기보다 나는 먼저 학교에..

길위의단상 2020.07.30

할아버지 사형제

할아버지대에는 네 형제분이 계셨다. 선비였던 증조부를 닮으신 분이 장남인 첫째 할아버지셨다. 당시 풍습대로 부모 재산은 대부분 첫째 할아버지가 물려받았다. 동생들은 형님댁 일을 거들어주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첫째 할아버지는 집안일에 관심이 없었고 글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음풍농월하는 양반이었다. 비가 와도 마당에 넌 곡식 하나 거둘 줄 모르는 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남마저 집안 일에 관심이 없고 밖으로 나돌다가 결국은 문전옥답을 비롯한 전 재산을 탕진해 버렸다. 형님 집에서 나오는 삯으로 생활하던 동생네까지 졸지에 집안이 몰락했다. 내가 세상에 나올 때 할아버지 형제네는 내 땅 한 평 없이 무척 가난한 처지였다. 양반이라는 껍데기만 남았다. 집이 부유하다면 형제간에도 우애가 있지만, 빈곤하게..

길위의단상 201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