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반주로 소주 한 병을 비우고 효자동에서부터 걷기에 나섰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답답하고 심란하지 않을 사람이 드물 것이다. 이러한 때 알코올의 위안마저 없다면 사람들의 속병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불황에 모든 매출이 떨어지는데 소주 소비만은 늘어난다고 한다. 창의문을 지나 인왕산으로 접어들었다. 역사는 승자의 환희와 함께 패자의 한숨과 눈물과 고난으로 얼룩져 있다. 경복궁에 인접한 이곳 인왕산 자락에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인간의 애환들로 가득할 것이다. 주택 사이로 난 골목길을 조금 들어가면 현진건 집터가 나오는데한쪽 구석에 무계동(武溪洞)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이곳에서 안평대군이 무계정사(武溪精舍)를 짓고 뜻 맞는 사람들과 글을 읽고 활을 쏘며 심신을 단련했다고 한다.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