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무릇 사이에서 가끔 흰무릇을 볼 수 있다. 무릇이 청초한 새색시 같은 이미지라면, 흰무릇은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 같다. 가녀린 모습에 밴 슬픔이 안스럽다. 같은 꽃이라도 색깔에 따라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그때 여름 밤골에는 무릇이 무더기로 피었다. 아침 이슬을 머금고 맑은 햇살에 역광으로 반짝이던 무릇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슬처럼 모든 게 사라져갔다. 꼭꼭 숨어 보이지도 않는 가녀린 두 잎에서 쏘옥쏘옥 살포시 어쩜 그리도 긴 긴 꽃대가 팔월 풀밭 구월 하늘 더미더미 무더기 송이송이 조르르 어쩜 그리고 고운 분홍꽃이 - 무릇 / 김종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