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7 2

용문사 은행나무(2)

천 년의 나무를 보러 용문사에 간다. 마음이 소란해질 때면 문득 당신을 만나고 싶어진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시대 때 태어난 당신, 천 년을 한결같이 한 자리에서 한 마음으로 살고 계신다.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당신의 기상은 여전히 대단하다. 천 년이 하찮은 듯 잎은 더욱 빛나고, 열매는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당신 옆에 서면 내 좁은 소견이 부끄러워진다. 속마음을 들켰으니 그저 합장만 할 뿐이다. 새로 만든 안내판에는 전에 보지 못하던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 전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나무라 하여 천왕목(天王木)이라고도 불렀으며, 조선 세종 때에는 정3품 이상에 해당하는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정미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절을 불태웠으나 이 나무만..

천년의나무 2012.09.27

박새에게 세들다 / 복효근

감나무 뒤 가까운 담벼락 돌틈 사이 박새 부부 둥지를 틀었나 보다 3월도 중순 너머 그런가보다 하기로 했다 안방에 둥지를 트는 것도 아니어서 새소리 몇 가락으로 세를 받기로 하고 새끼 깔 그동안만 전세 내주지 담벼락 앞 감나무 사이 나무 하나 더 심으려 무심코 정말 무심코 오늘 구덩이 하나 파려는데 갑자기 박새 부부 내 앞을 달겨든다 네 집이기도 하지만 내 집이기도 하다 점유권을 주장한다 아차차 그동안 몇 조각 새소리 미리 받아 들었던 게 죄로구나 엉겹결에 구덩이를 포기하고 나무 심기를 포기하고 이 봄을 저 박새 부부에게 맡기기로 하는데 저 부부 정말 전세 등기라도 한 모양 당당해서 아무 말 못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집 나무란 나무 제 식탁으로 대숲 그늘은 제 주방으로 저 하늘 구름은 제 신혼이불로 내 안..

시읽는기쁨 2012.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