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 46

고불산을 넘어 집에 오다

두 개의 태풍이 지나간 뒤 햇살이 더욱 환하다. 하늘도 푸른색을 되찾다. 이런 날은 걷기 본능이 마구마구 꿈틀댄다. 분당 야탑에 있는 치과에서 이빨 치료를 받고 고불산을 넘어 집에까지 걸었다. 탑골공원에서 산에 들어 능선길을 따라 걷다가 고불산을 지나 우남아파트로 내려오는데 3시간이 걸렸다. 걷기에 좋은 산길이었지만 실수로 물을 준비하지 않은 탓에 내내 갈증에 시달려야했다. 산 아래 내려와서는 기진맥진했다. 분당 메모리얼 파크 옆의 소나무 길. 고불산 정상에서 바라본 성남 지역. 지난 태풍으로 산길은 밤송이와 나뭇잎으로 덮여 있어서 어수선했다. 오늘 길은 처음 걷는 길이 대부분이었는데 타박타박 걷기에는 아주 좋았다. 영장산과 연계해서 다시 한 번 걸어봐야겠다.

사진속일상 2012.08.31

장자[217]

옛날 우임금이 홍수를 막기 위해 양쯔강과 황허를 다스려 사이와 구주를 통하게 했는데 명산이 삼백이요, 지천이 삼천이며 작은 것은 수도 없었다. 우임금은 손수 삼태기와 따비를 들고 천하의 하천을 뚫어 강하로 모이도록 했다. 정강이와 장딴지에 털이 다 닳았으며 소낙비에 목욕하고 사나운 바람에 빗질하며 만국을 안정시켰다. 위대한 성인이신 우임금도 이처럼 천하를 위해 육체노동을 하셨다. 昔者禹之湮洪水 決江河 而通四夷九洲也 名山三百支川三千 小者無數 禹親自操탁거 而九雜天下之川 비無발脛無毛 沐甚雨櫛疾風 置萬國 禹大聖也 而形勞天下也如此 - 天下 1 '천하'편은 중국 사상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 내용은 묵가에서 노동의 정당성으로 삼기 위해 인용하는 고사다. 이에 고무되어 후세의 묵가들은 털가죽과 칡베옷을 입고 밤낮으로 ..

삶의나침반 2012.08.31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여도 바람이 멈추지 않고

공자가 제나라로 가는 도중에 곡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매우 슬펐다. 공자가 하인에게 말했다. "이 곡소리는 슬프기는 하지만 누군가 죽어 상을 당한 슬픔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나아가니 어떤 사람이 낫과 새끼줄을 들고 있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다가가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제 이름은 구오자(丘吾子)입니다." "당신은 지금 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슬프게 곡을 하고 있소?" 공자의 질문에 구오자가 대답했다. "제게는 살아감에 있어 세 가지의 실책이 있었습니다. 이를 오늘에야 뒤늦게 깨달았으니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때문에 이를 슬퍼하여 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자는 다시 곡을 시작하는 구오자를 향해 물었다. "세 가지의 실책이라니요. 내게 숨김없이 말해주시기..

참살이의꿈 2012.08.30

원정리 느티나무

들판 한가운데 있어서 분위기가 색다른 느티나무다.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드라마 '로드 넘버원'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더 유명해졌다. 찍은 사진을 보면 가을에 황금 들판을 배경으로 서 있을 때가 제일 아름답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함께 찍어보면 멋있을 것 같다. 보은군 마로면 원정리에 있다. 키는 15m, 줄기 둘레는 4m로 단아하게 생겼다. 수령은 500년이다.

천년의나무 2012.08.30

한반도를 덮은 볼라벤

태풍 볼라벤이 서해를 통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한반도 전체가 태풍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 있다. 이곳은 비보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울부짖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위력을 실감한다. 오늘 상황을 나타내는 기상 사진을 모아 보았다. 적외선 영역과의 합성사진 강수 지역을 표시하는 레이다 영상 천리안위성이 찍은 사진 일본 기상청 사진 볼라벤 경로 일기도 집 앞 풍경

사진속일상 2012.08.28

화성의 속살

화성 탐사선 '큐리오시티(CURIOSITY)'가 지난 8월 6일에 화성에 착륙했다. 작년 11월에 지구를 출발하여 8개월여 만에 무사히 도착했다. 큐리오시티는 주로 화성의 생명체 존재 여부를 조사한다고 한다. 그동안 조용하던 미항공우주국[NASA]이 이제 화성에 주목하는 것 같다. 인간의 호기심은 멈출 줄 모른다. 큐리오시티가 보내주는 선명한 화성 표면 영상에 가슴이 설렌다. 우리 사막의 일부라 해도 믿을 정도로 지구와 닮았다. 아주 옛날에는 화성에도 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면 생명체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 흔적이라도 발견한다면 대단한 성과가 될 것이다. 먼 미래의 어느 때에는 저곳에도 인류가 북적거리며 살게 될까? 나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큐리오시티가 보낸 사진이다. 큐리오시티를 화성에 착륙시..

길위의단상 2012.08.28

소설 공자

는 최인호 작가의 근작 장편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여러 사료에 근거하여 공자의 삶을 재구성했다. 공자의 출국과 주유천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가 오늘과 별로 다르지 않다. 2천 년 전 예수가 살았던 유대 사회도 마찬가지다. 성인의 삶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되는 책이다. 책에는 공자 외에 노자와 장자, 예수 이야기도 나온다. 공자의 사상과 비교하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유가와 도가의 차이를 좀더 명료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런 차이가 그분들의 삶에서도 완연히 드러난다. 노자는 세상에 알려지자 함곡관을 통해 사라졌지만, 공자는 끝없이 세상과 권력을 찾아 들어간다. 불가능한 일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시밭길을 가는 것이다..

읽고본느낌 2012.08.28

태풍 전야

센 놈이 올라오고 있다. 제15호 태풍 볼라벤(BOLAVEN)이다. 오후 3시 현재 태풍의 중심은 제주도 남서쪽 380km 해상에 있다. 중심 기압이 950hPa인 대형 태풍이다. 서해안을 따라서 북상할 태세여서 큰 피해가 예상된다. 2년 전 곤파스 때는 살던 집의 베란다 유리창이 박살 나서 너무 놀랐었다. 서울 지역 학교는 내일 임시휴업에 들어간다. 이곳 경기 지역도 바람이 점점 세게 불며 하늘이 구름으로 덮이기 시작한다. 내일 오후 2시경에 최근접한다고 예보되어 있다.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어야 할 것 같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태풍 전야다. 볼라벤의 예상 진로도. 8. 27. 16:00, 이배재고개

사진속일상 2012.08.27

오가리 느티나무(2)

4년 만에 다시 이 느티나무를 만났다.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에 있다. 오가리(五佳里)는 산, 물, 땅, 곡식, 인심이 좋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오가리 우령마을 역사도 800년이나 되었다. 처음 이 느티나무를 만났을 때 800여 년이라는 나이뿐만 아니라 굵은 줄기와 우람한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그 뒤로 느티나무 하면 바로 이 오가리 느티나무가 떠오른다. 이번에는 괴산을 지나다가 우연히 다시 들리게 되었다. 그때는 앞 도로가 공사중이었는데, 지금은 넓게 뚫려 있다. 공원 안에는 두 그루가 있는데 이 느티나무는 아래에 있다고 하여 하괴목(下槐木)이라고 한다. 품새가 단정해서 곱게 늙으신 할아버지 같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 사람들이 성황제를 지내는 곳도 이 나무 앞이다. 상괴목이다. 하괴목에 비해 키는 더..

천년의나무 2012.08.26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 나희덕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 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 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 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 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 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 나희덕 광주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 우연히 후배 B를 만났다. 성체를 영하는 줄에 그가 서 있었다. 그만의 약간..

시읽는기쁨 2012.08.26

도둑들

광주에도 극장이 생겼다. 광주터미널 2층에 롯데시네마가 들어왔다. 인구가 30만이 안 되는 소도시라 그런지 그동안 영화관 하나 없었다. 영화를 보려면 서울이나 분당으로 나가야 했다. 3개 관의 작은 규모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영화관이 생긴 건 기뻐할 일이다. 개관 기념으로 '도둑들'을 보았다. 얼마 전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화제의 영화다. 본 사람이 재미있는 영화라고 추천도 해 주었다. 무거운 메시지를 주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이런 오락 영화도 즐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 영화가 얼마나 발전했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확인하고도 싶었다. 그런대로 재미있게 봤다. 후반부로 갈수록 스릴이 있고 흥미진진했다. 스피디한 전개와 끝없는 반전이 유쾌한 활극을 만들었다. 쿨한 영화였다. 카지..

읽고본느낌 2012.08.25

금굴리 송림

보은 금굴리에 있는 소나무 숲이다. 마을 앞 길과 논에 난 둑을 따라 소나무 87그루가 자라고 있다. 수령이 200 ~ 300년 사이의 나무들이다. 누가 이 소나무 숲을 조성했는지 자료가 없지만 지금은 명품 숲이 되었다. 이웃에 있는 임한리 송림은 한 곳에 모여 있는데 비해, 여기 소나무들은 길을 따라 서 있다.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다. 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둑으로는 나무 데크를 설치했다. 여기 있는 나무 전체가 보호수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의 다른 이름은 '은사뜰'이다. 한자로는 은사평(隱士坪)이라고 쓰는데 숨어 지낸 선비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소나무 숲이 마을의 품격을 올려 놓았다. 처음 소나무를 심었던 사람의 혜안이 돋보인다. 소나무 길에는 비슷한 나이의 왕버들 5그루도..

천년의나무 2012.08.24

임한리 송림

보은군 탄부면 임한리(林閑里)는 구병산 아래 너른 들판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이름에 '수풀 림[林]'자가 들어있는 걸 보아 나무가 많았던 마을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수령이 200년 내외 된 소나무 100여 그루가 숲을 이루며 남아 있다. 충북의 명품 자연환경 100선에 들어 있을 정도로 풍광이 좋다. 여름철이어선지 송림 안은 잡초가 우거져 다닐 수가 없었다. 바깥 울타리를 따라 한 바퀴 돌며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잘 단장해 놓으면 경주 왕릉에 있는 솔숲에 비길 수 있을 정도로 멋진 소나무들이 많았다. 가을에 벼가 노랗게 익을 때면 훨씬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줄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2.08.24

덕동리 은행나무

보은군 탄부면 덕동리에 있는 은행나무다. 수령은 600년 가까이 되었고, 나무 높이는 25m, 줄기 둘레는 6.6m나 되는 거목이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있어 더욱 위풍당당하고 웅장하게 보인다. 완전히 노출된 지대여서 바람이 심할 텐데 나무는 긴 세월을 잘 견뎌왔다. 그동안 천 개가 넘는 태풍을 만났을 것이다. 이제 노쇠한 몸이 센 바람을 막아내기에는 점점 불가항력이 될 것 같다. 다행히 충북 지역은 일반적인 태풍의 진로에서 어긋나 있어 자연재해가 적은 편이다. 암나무여서 은행이 주렁주렁 많이 열려 있다. 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마을을 굽어보며 서 있다.

천년의나무 2012.08.23

사직리 팽나무

보은군 탄부면 사직리 마을 어귀에 있는 팽나무다. 보호수이면서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로 잘 관리되고 있다. 나무 높이는 19m, 줄기 둘레는 3.3m에 이른다. 마침 나무 아래서 쉬고 계시는 마을 어르신 한 분을 뵈었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120년으로 나와 있는데 더 되어 보인다 했더니 200년도 넘었을 거라고 하신다. 본인이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는데 70년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크기였다며 나무 자랑에 여념이 없으시다. 그런데 10여 년 전에 고사 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바닥의 시멘트를 걷어내니 다시 살아나더라고 설명하신다. 어르신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이곳 주산물이 고구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구마꽃을 보신 적이 있냐니까, 잘 피지 않는데 금년에는 보인다면서 산 쪽 밭으로 안내를 자청하신..

천년의나무 2012.08.23

풍림정사 은행나무

보은군 회인면 눌곡리에 있는 풍림정사(楓林精舍)는 박문호(朴文鎬, 1846~1918)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강당이다. 선생은 조선 말기의 성리학자로 개화기의 혼란 속에서 과거를 단념하고 초야에 묻혀 오로지 학문의 정진과 후학 양성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특히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을 지어 깨인 의식을 보여주었다. 이 은행나무는 아담한 정사의 건물과 잘 어울린다. 야트막한 뒷산과 정사, 은행나무, 앞 들판이 고향에 온 듯 포근하다. 은행나무는 수령이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100년에서 200년 사이 쯤으로 보이는데, 아마 선생이 정사를 세우면서 심었을 것이다. 정사에 어울리는 나무이면서 주변 풍경과도 잘 조화를 이루는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2.08.23

서원리 소나무

서원리 소나무는 정이품송과 7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래서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나무를 정이품송의 부인송이라 부른다. 실제로 정이품송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꽃가루를 받아 이 나무에 수정하기도 했다니 부인이 맞기는 맞는가 보다. 생김새도 정이품송과 달리 줄기가 둘로 갈라져서 자라고 있다. 곧게 자란 모양보다는 여성을 상징하는 모양새로 어울린다. 수형은 약간 헝클어져 있긴 하지만 우산을 펼친 모양이다. 밖에서보다는 안에서 보는 게 훨씬 더 웅장해 보인다. 가지 끝이 땅에 닿을락 말락 펼쳐져 있어 포근하게도 느껴진다. 나무는 높이 15m, 줄기 둘레는 각각 3.3m, 2.9m다.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천연기념물 352호다.

천년의나무 2012.08.22

정이품송

1980년대만 해도 원뿔형의 균형 잡힌 몸매를 자랑하던 정이품송이었는데, 1993년 강풍과 2004년의 폭설로 나무 한 쪽이 거의 사라졌다. 아름답던 옛 모습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그나마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게 다행이다. 워낙 높으신 지체라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 덕분이리라. 이 나무에 전해오는 얘기를 안내문을 통해 다시 읽어본다. '세조는 재위 10년 음력 2월, 요양을 목적으로 온양과 청원을 거쳐 보은 속리산을 방문한다. 말티재를 넘어 속리산으로 가던 중, 길목에 있는 소나무에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輦)이 걸릴 것 같아 '연 걸린다'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져 있던 가지가 스스로 올라갔고, 돌아오는 길에는 갑자기 비가 와서 일행은 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고 한다. 세조는 "올 때..

천년의나무 2012.08.22

나무여행 - 보은

어제는 보은 땅으로 나무여행을 다녀왔다. 온전히 나무만 만나기 위해서 떠났다. 계획에 들었지만 못 만난 나무가 있었고, 우연히 마주친 나무도 있었다. 지도를 보고 동선 계획을 짜지만 현장에 가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만난 나무는 다음과 같다. 풍림정사 은행나무 - 금굴리 송림 - 고승리 느티나무 - 사직리 팽나무 - 덕동리 은행나무 - 임한리 송림 - 원정리 느티나무 - 서원리 소나무 - 정이품송 - (오가리 느티나무) 사진의 나무는 보은군 마로면 원정2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사진발이 잘 받는 나무로 유명하다. 이때는 해가 쨍쨍하더니 곧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쏟아졌다. 가을장마철이다.

사진속일상 2012.08.22

장자[216]

장자가 장차 죽으려 하자 제자들이 후한 장례를 치르려 했다. 장자가 말했다. "나는 천지로 관곽을 삼고 일월로 구슬을 두르고 별들로 거울을 삼았고 만물로 제물을 삼았으니 이미 장례를 다 준비했거늘 어찌 부족하다 하며 무엇을 더하려 하느냐?" 제자가 말했다. "까마귀와 솔개가 선생을 뜯어 먹을까 염려됩니다." 장자가 말했다. "위에 있으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아래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되어야 하거늘 이들에게서 빼앗아 저들에게 주려 하니 어찌 편벽됨이 아니겠느냐?" 莊子將死 弟子欲厚葬之 莊子曰 吾以天地爲棺槨 以日月爲連璧 星辰爲珠璣 萬物爲재送 吾葬具 豈不備邪 何以加此 弟子曰 吾恐烏鳶之食夫子也 莊子曰 在上爲烏鳶食 在下爲루蟻食 奪彼與此 何其偏也 - 列禦寇 6 생사를 초월한 장자의 스케일이 느껴지..

삶의나침반 2012.08.20

이순

공자님은 나이 예순을 이순(耳順)이라 했다. 말 그대로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어떤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칭찬이나 비난이 똑같이 들린다. 시비를 가리려는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말도 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공자는 천하를 유랑하며 온갖 세상 풍파를 다 겪었다. 숱한 곤경을 당하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60대는 그분이 한창 주유천하 하던 시기다. 68세 때 고향 곡부에 돌아와 교육 사업에 전념한다.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게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귀가 순해졌다는 게 그런 뜻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공자님의 이순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다. 내 나이도 예순이다. 그러나 나는 귀가 순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예민해지니 어찌 된 일인가. 천..

참살이의꿈 2012.08.20

잠적

B 선배가 잠적했다. 두 달 전 학교에 명퇴 신청서를 낸 뒤부터 연락 두절이다. 풍문으로 들리는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수업 시간에 학생과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을 나무라는 과정에서 욕설을 한 모양이다. 모욕을 당했다며 학생의 부모가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고, 학교로 공문이 내려와서 그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많이 시달린 것 같다. 자랑할 일이 아니라 주변 사람도 쉬쉬하니 저간의 상세한 사정을 모르지만, 선배가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많이 자책도 할 것이다. 수학을 전공한 선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무척 열성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항상 문제를 풀며 교재 연구를 했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고 젊은 선생들 두세 배는 노력했다. 같이 근무했을 때 보면 ..

길위의단상 2012.08.19

이 슬픔을 팔아서 / 이정우

이 슬픔을 팔아서 조그만 꽃밭 하날 살까 이 슬픔을 팔면 작은 꽃밭 하날 살 수 있을까 이 슬픔 대신에 꽃밭이나 하나 갖게 되면 키 작은 채송화는 가장자리에 그 뒤쪽엔 해맑은 수국을 심어야지 샛노랗고 하얀 채송화 파아랗고 자줏빛 도는 수국 그 꽃들은 마음이 아파서 바람소리 어느 먼 하늘을 닮았지 나는 이 슬픔을 팔아서 자그만 꽃밭 하날 살꺼야 저 혼자 꽃밭이나 바라보면서 가만히 노래하며 살꺼야 - 이 슬픔을 팔아서 / 이정우 슬픔이 얼마나 진했으면 시인은 슬픔을 팔아 꽃밭 하나 사고 싶다고 했을까? 슬픔을 살 사람은 없으니, 슬픔이 팔릴 리가 없다는 걸 시인도 잘 알 것이다. 슬픔을 팔겠다는 건 슬픔과 함께 하겠다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이때의 슬픔은 처음의 비탄이 아니라, 고운 꽃으로 승화된 슬픔이다...

시읽는기쁨 2012.08.18

아름다운 마무리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최악의 경우도 상상된다. 암에 걸려 고통에 시달린다든지, 치매로 정신줄을 놓아버릴까 봐 겁이 난다.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선종(善終)'이라는 말 그대로 아름답게 이 세상을 뜨고 싶다. 스코트 니어링이 떠오른다. 그분은 100세가 되자 스스로 곡기를 끊음으로써 품위 있는 죽음을 만들었다. 옆에서 도와준 아내의 역할도 컸다. 작년에 봤던 영화 '청원'도 생각난다. 안락사를 다룬 내용인데 전신마비의 고통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약물로 죽음을 맞는다. 죽음의 순간이 친구들이 모여 노래하고 추억하는 즐거운 파티가 되었다. 박기호 신부님이 쓴 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끝 부분에 어..

읽고본느낌 2012.08.18

두물머리 느티나무(2)

두물머리는 옛 지도에 양수리(兩水里), 또는 이수두(二水頭)로 나온다. 이중 '이수두'는 두물머리를 억지로 한자로 쓴 듯하여 어색하다. 어찌 됐든 이곳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풍광 좋은 곳이다. 옛날에는 수륙 교통의 요충지였을 것이다. 머리에 해당되는 맨 끝에 400년 된 느티나무가 당당하게 서 있다. 아마 팔당댐이 들어서기 전에는 강물 경계가 훨씬 아래였을 것이지만, 지금은 강물 바로 옆에서 자라고 있다. 댐의 물이 이 나무를 덮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댐이 건설되면서 두물머리의 나루터 역할도 사라졌다. 이곳은 4대강 사업으로 말미암은 갈등의 지역이 되었다. 4대강 사업으로 강변 정리를 하면서 이곳에 있는 유기농 단지를 없애려 하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서는 2년 넘게 현장에서 매일 미사를 드..

천년의나무 2012.08.17

이포보

드라이브를 나간 길에 여주 이포보에 들렀다. 이 며칠 마음이 울적했던 차였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연일 비 내리는 궂은 날씨 탓이기도 했다. 거기에 옛 밤골 생활의 기록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우울에 우울이 겹쳤다. 기어코 4대강 사업도 끝났고 보도 완성되었다. 공사 중일 때 몇 차례 이 옆을 지날 때는 눈길도 주기 싫었다. 환경운동가들이 여기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지만 공사에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놓았을까, 궁금했다. 보 위에 건설된 다리를 따라 반대편까지 갔다 왔다. 이곳에 보가 왜 필요한 건지 현장에서 봐도 의문이 든다. 단순히 물을 막기 위해 이런 거대한 시설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홍보 자료를 보면, 첫째, 물 부족과 홍수 예방. 둘째, 수질 개선..

사진속일상 2012.08.16

황당한 부탁

모교에서 전화가 왔다. 제자라는 사람이 나를 찾는데 전화번호를 가르쳐줘도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했더니 잠시 후 벨이 울렸다. 10여 년 전에 J고등학교에서 2학년 때 담임을 했던 제자였다. 이름을 말하는데 간신히 얼굴이 기억났다. 졸업 후에는 아무 소식도 없다가 갑자기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다음다음 주에 결혼을 하는데 주례를 서달라는 부탁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고작 결혼식 두 주를 앞두고 느닷없이 전화로 주례 부탁이라니, 선생이 무슨 커피 자판기도 아니고 내심으로는 많이 불쾌했다. 몸 핑계를 댔더니 제자도 싹싹하게 전화를 끊었다. 주례를 부탁할 정도면 어느 정도는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줄은 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싶다. 최소한 몇 달 정도만 미리 얘기했어도 고민을 했을 것이다...

길위의단상 2012.08.15

올림픽 단상

런던 올림픽이 끝났다. 올림픽 중계를 보다 보면 외국 선수의 직업이 소개될 때가 있다. 유럽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교사, 소방관, 검찰관 등 다양하다. 우리는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국가대표 선수촌에 입촌하고 몇 년간 운동에만 전념하며 전문 훈련을 받는다. 외국 사정을 잘 모르지만 우리만큼 특별 훈련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직업이 있다는 것은 근무시간 외에 파트타임으로 틈틈이 훈련하는 것은 아닐까?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차이다. 우리나라가 메달을 많이 따고 스포츠 강국이 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외화내빈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국민 전체가 운동을 즐기기보다는 소수정예주의로 성적을 낸다. 외국에는 운동 종목별로 많은 클럽이 있고, 거기에 등록된 선수가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그만큼 운동..

길위의단상 2012.08.14

장자[215]

어떤 사람이 송왕을 알현하고 수레 열 대를 하사받았다. 그는 유치하게 이를 장자에게 자랑했다. 장자가 말했다. "황허 위에 가난한 사람이 살았는데 갈대로 발을 짜서 먹고살았다. 그 아들이 연못에 들어갔다가 천금을 구슬을 얻었다. 그 아비가 아들에게 일러 말했다. '돌을 주워다가 구슬을 부수어버려라! 이 천금의 구슬은 깊은 연못에 사는 검은 용의 턱 밑에 있었는데 네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용이 잠잘 때 만난 때문이다. 만일 네가 용을 깨웠다면 너는 어찌 가루나마 남아 있겠느냐?' 지금 송나라의 깊음은 연못의 깊음으로는 당할 수 없고 송왕의 사나움은 용의 사나움으로도 당할 수 없다. 그대가 열 대의 수레를 얻은 것은 반드시 송왕이 잠들었을 때일 것이다. 만약 그대가 송왕을 깨웠다면 그대는 가루로 부서졌..

삶의나침반 2012.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