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네 잎 클로버

샌. 2009. 12. 31. 08:32


밤골에서 D 수녀님이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네 잎 클로버를 보내주셨다. 부서질 듯 바싹 마른 클로버를 조심스레 손 위에 올려놓고 바라본다. 클로버 잎에서 생긴 점이 점점 커지더니 넓은 화면으로 변하고옛날 밤골에서의 풍경이 열린다.

 

그때....

 

수녀원 잔디밭에는 토끼풀이 많이 자랐다. 특히 성모상 옆에서는 네 잎 클로버가 자주 눈에 띄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한두 개 쯤은 어렵지 않게찾을 수 있었다. 미사 시간이나 또는 수녀님을 기다릴 때면 심심풀이로 잔디밭에 쪼그려 앉곤 했다. 그때 그곳에는 행운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따뜻한 봄날이었다.

 

10년 전 어느 겨울, 비포장 산길을 따라 어렵게 찾아간 밤골과는 그렇게 인연이 맺어졌다. 첫눈에 반했고, 한 순간에 그곳은 내 이상향이 되었다. 적막 속에서 보내는 며칠 동안하늘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땅도 춤을 추며 출렁거렸다.

 

그리고....

 

땅을 사고, 집을 짓고, 부푼 가슴으로 밤골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호기있게 탈서울을 했다. 십자가의 성요한 기도문을 아침 저녁으로 드렸다. 아무 것도 아니기를, 아무 것도 가지지 않기를 기원했다. 좋은 것만 눈에 띄었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먹구름은 너무 일찍 찾아왔다. 집 뒤의 산이 헐리고 난장판이 되면서상황이 급변했다. 좌절하고, 싸우고, 허우적거렸다. 낙원은 점차 연옥으로 변해갔다. 찬 바람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나쁜 일은 꼬리를 물고 찾아왔고 마지막까지 심술을 부렸다. 사람까지 잃은 것은 나의 큰 불찰이었다.

 

이제....

 

털고 나온지 2 년이 지났다. 차분히 뒤돌아 볼 여유가 아직도 생기지 않는다. 밤골 부근으로는 일부러 발길을 피한다. 인생에서 행하는 모든 선택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최선이었음을 믿는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을 저울질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세상이 그렇게 굴러가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밤골에서 온 네 잎 클로버가 쓸쓸히 웃고 있다. 이젠 그만 미워하자. 전화선으로 들리는 수녀님의 목소리가 여전히 소녀처럼 맑았다. 밤골의 수녀님을 언젠가 찾아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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