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과정을 인간 정신의 성숙 단계와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연속적이지만 전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엄청난 도약이다. 어느 순간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새로 태어나기를 원한다면 옛 세계는 파괴되어야 한다.
알의 단계
알은 0차원의 점이다. 그러나 알도 역시 하나의 생명체면서 세계다. 그 안에는 미래의 모든 가능성이 내장되어 있다. 그러나 스스로는 시공간을 지각하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다. 알은 가장 낮은 단계의 의식 수준이다. 인간 중에도 의식 수준이 여전히 알의 상태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의 세계에 갇혀 바깥을 보지 못한다. 자신의 좁은 세계를 우주의 전부라고 착각한다. 그러니 감히 알에서 깨어 나오려는 발상을 하지 못한다. 성찰과 사유는 그와는 거리가 멀다. 오직 단세포적인 만족만이 있을 뿐이다.
애벌레의 단계
알에서 깨어나면 애벌레가 된다. 2차원적 존재가 된 것이다. 애벌레는 끊임없이 먹이를 섭취하며 욕구를 채워나간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는 벗어났다지만 그를 지배하는 것은 동물적 욕망이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는 관심 밖이다. 그의 눈에는 오직 물질적인 세계밖에 보이지 않는다. 욕망의 성취를 통한 몸집 불리기야말로 생존의 최대 목표다. 비록 겉으로는 고상하게 보이는 이상일지라도 본질은 물질에의 집착과 이기심에 다름 아니다. 그는 철저히 세상 속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한다.
번데기의 단계
애벌레에 만족하지 못하는 정신이 있다. 그는 번데기의 단계를 선택한다. 애벌레의 부드럽던 피부는 딱딱하게 변하고 어두운 고치 속으로 숨는다. 고통과 시련의 시기가 찾아온다. 한 정신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번데기의 단계가 필요하다. 예수가 악마의 유혹을 이겨냈듯 위대한 정신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그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 절대고독과 마주친다. 그리고 살을 찢는 고통을 넘어서야 그의 몸에서는 날개가 돋는다.
나비의 단계
그는 3차원의 존재가 되어 가볍게 하늘을 난다. 중력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났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이념도 신앙도 사상도 그를 얽어매지 못한다. 지상의 먹이에 더 이상 목을 매지 않는다. 그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생명체로 변했다. 진리가 그를 자유하게 한 것이다. 장자식의 표현으로는 현해(懸解)라고 한다. 의식은 진화하여 결국 이 단계에 이른다. 물질은 정신을 낳고 정신은 나비가 된다. 우주는 나비들의 춤을 원한다.
니체도 인간 정신의 성숙이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변화한다고 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위버멘슈’[초인]로 완성된다.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한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옛 패러다임의 균열에서 시작되고 그 폐허 위에 만들어진다.
“새는 알에서 깨어 나오려고 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먼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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