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행복의 정복

샌. 2009. 11. 11. 08:48

러셀의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을 처음 읽은 건 스무 살 무렵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책은 파이프를 문 러셀의 케리커쳐가 표지에 그려진 작은 문고본이었다. 내가 들고 있던 이 책을 보며 네비게이터 회원이었던 친구가 묘한 미소를 지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의 표정에서는 "세상의 철학으로는 행복을 절대 찾을 수 없을 걸" 하는 냉소 비슷한 의미가 느껴졌다. 당시 나는 그가 속한 신앙 공동체와 막 결별하고 난 직후였다. 그때로부터 3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만난 ‘행복의 정복’을 읽는 감상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러셀은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처한 불행의 원인을 알고 적절한 방향으로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자신만만해서인지 책의 제목에 ‘정복’이 들어간 것은 오만한 인상도 든다. 산을 ‘정복한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도 책 내용이 좋아 그 정도쯤은 애교로 봐줄 만하다. 많은 행복 안내서들이 있지만 이만큼 명쾌하면서 논리적이고 실용적인 내용도 드물다. 젊었을 때의 감상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각성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중의 하나가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과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의 강조였다. 자신의 내면세계로 도피하지 말라고 러셀은 말한다. 종교적인 가르침은 대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내면으로 잠겨들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세상이야말로 내 생존을 지탱하는 토대며 행복을 가져다주는 터전이다. 행복은 세상과 그리고 타인과 교류하는데서 찾아야한다. 물론 이것은 세상과 영합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뜬구름 잡듯 하는 관념적이고 유심론적 관점에 빠지지 말라는 뜻이다. 이건 마치 나에게 하는 충고로 들렸다. 자신의 감옥에 갇히지 말 것! 인생에 적극적으로 맞서서 즐길 것!


러셀은 열정을 가지고 세상과 호흡하면서 행복을 찾으라고 한다. 러셀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인생을 이끈 강렬한 열정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꼽았다. 사랑에의 열망, 지식의 탐구, 그리고 인류의 고통에 대한 견디기 힘든 연민이 그것이다. 그는 자유연애를 주장하며 결혼제도를 반대한 자유사상가였고 수학자며 철학자였다. 또 평화와 인권을 위해 싸운 반전주의자이기도 한 러셀은 양심과 신념에 따라 산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대표적 무신론자이기도 한 러셀은 특정의 이데올로기나 도그마를 혐오했다.


러셀은 이념이나 사상보다는 자신의 욕구와 본능에 따르라고 말한다. 외부에 의해 규정되고 제시된 삶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불행의 원인이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느라, 혹은 종교적인 계명에 순종하느라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삶을 사는 태도는 옳지 않다. 자신의 욕구가 부정되면 ‘나’와 ‘세상’의 대립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내면의 조화와 평화를 누릴 수 없다.


러셀은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서구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심어준 죄의식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었다. 믿음도 심리적으로는 일종의 도피 상태로 볼 수 있다. 믿음으로의 도피에서 생기는 자아분열은 도취의 상태를 벗어나면 다시 허전함이나 공허함으로 돌아온다. 종교 역시 중독의 위험이 있다. 러셀은 이성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종교가 제시하는 인간에 대한 그릇된 관점에서 벗어나기를 권한다. 이런 것은 이성을 통한 합리적 인식과 자각을 통해 깨트릴 수 있다.


또한 러셀은 지금과 같은 반인간적 경쟁시대에는 차라리 지혜로운 구경꾼이 되라고 충고한다. 경쟁의 대열에 들어서 끝없이 욕망 추구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현대판 공룡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강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 가지 않아 몰락할 존재들이다. 공룡의 발길 아래서 조용히 숨어 기다리던 보잘 것 없는 생명들이 결국은 무대의 주역을 맡을 것이다. 동양적인 중용과 체념 또한 아름다운 가치다.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삶에서 온다.


행복론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복에 관한 지식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글을 읽지도 못하는 산골의 촌부가 가장 행복한 삶을 살지도 모른다. 그런 사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행복의 정복’은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마음속 깊은 곳의 본능을 좇아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에 몸을 맡길 때, 우리는 가장 큰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