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짚 한오라기의 혁명

샌. 2012. 2. 1. 08:27

<짚 한오라기의 혁명>을 쓴 후쿠오카 마사노바(福岡正信)는 농부라기보다 사상가요 철학자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는 자신의 깨달음인 일체무용론(一切無用論)을 농업에 적용하여 자연농법(自然農法)을 창안했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40년 동안 연구한 결과다. 자연농법은 땅을 갈지 않고, 비료를 쓰지 않고, 농약을 쓰지 않고, 제초를 하지 않는다. 지금의 과학농법이나 심지어는 유기농법과도 질적으로 다른 혁명적인 농사법이다.

선생은 일체의 인위를 쓸모없는 것이라 본다. 인위를 가치 있는 것이라 여기는 현대의 가치관이 문제의 근원이다. 과학 지식을 비롯한 모든 인간 행위는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왜소화시켰다. 자연농법은 그런 인간의 지혜를 부정하는 무위의 농법이다. 농부는 놀고, 농사는 자연이 짓는다.

자연농법으로 쌀과 보리농사를 짓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벼를 베기 전인 가을에 벼이삭 위로 클로버 씨앗을 뿌리고, 이어서 보리 씨앗을 마찬가지로 흩어뿌린다. 벼를 벨 때가 되면 클로버나 보리는 2~3센티미터 정도 자라 있다. 보리밟기를 하면서 벼베기를 하는 셈이다. 탈곡을 하고 난 볏짚은 기장째 논 전면에 흩어뿌려준다. 그리고 11월 중순 이후에는 볍씨를 점토단자로 만들어 다시 뿌린다. 점토단자로 만드는 이유는 씨앗을 쥐나 새들이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뒤에 건조시킨 계분을 적당히 뿌려주면 파종은 끝이다.

5월에는 보리베기를 한다. 이때 볏모를 밟을 수밖에 없지만 쓰러진 볏모는 스스로 모양을 되찾는다. 보리베기와 탈곡을 하고 난뒤 생기는 보릿짚은 길이 그대로 논 전면에 흩뿌려둔다. 클로버가 지나치게 무성해지면 일주일 정도 논에 물을 대서 클로버의 성장을 억제시킨다. 6~7월에는 물을 대지 말고 그 뒤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물을 흐르게 하는 정도로 해서 결실의 계절을 맞이한다. 이것이 쌀과 보리를 함께 기르는 자연농법의 대체적인 방법이다.

씨앗 뿌리기에 한두 시간, 짚 덮기에 두세 시간, 그 밖에 수확에 드는 노력을 별도로 한다면, 보리는 한 사람의 힘만으로 가능하고, 벼는 두세 사람의 힘만 있으면 충분하다. 땅을 갈 일도, 퇴비를 만들 필요도 없다. 선생은 이것을 '쌀-보리 땅 갈지 않고 이어 바로 뿌리기'[米麥連續不耕起直播]라고 부른다. 짚은 발아를 도와주고, 잡초를 방지하며, 지력을 증강한다. 저렇게 농사를 지어도 될까 싶지만, 소출량은 과학농법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자연농법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농사를 지어온 원형에 가깝다.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어머니 지구가 베푸는 혜택을 온전히 누린다. 인류가 살아남을 길은 자연농법과 소농(小農)의 길뿐임을 선생은 강조한다. 자연을 약탈하고 확대를 지향하는 정책은 파멸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이 계속된다면 인류는 언젠가 고갈된 어머니 지구의 젖꼭지를 물어뜯으며 울부짖게 될 것이다. 지속 가능하면서 인간다운 생활이란 원시생활과 같아 보이는, 이른바 소농에서 찾아야 한다. 작고 가난하게 사는 자급자족 시스템이다. 이는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 공동체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후쿠오카 마사노바를 '현대의 노자'라고 일컫는다. 선생의 견해는 상당히 과격하다. 모든 사람이 농부가 되어야 한다는 국민개농(國民皆農) 사상도 피력한다.

어느 세미나에서 선생은 이런 얘기를 했다. 선생의 사상을 잘 나타내 주는 말이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농사를 위해, 그러한 생활을 위해,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자 노력해왔을 뿐입니다. 40년에 걸쳐서, 저런 것은 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또한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하며, 되도록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으로 농부의 길을 걸어온 데 지나지 않습니다. 인생에는 목표가 있으며,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 있는 삶이냐는 말을 하지만, 인간에게 목표 따위는 본래부터 없습니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저는 40년 전에 알았습니다. 그 모두가 인간이 제멋대로 정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유해지고 행복해지리라는 착각 속에서, 헛된 목적을 세우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보잘것없는 삶이 되고, 보람 없는 생활이 되지 않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아무런 목표도 없이 한가하게 낮잠을 자며 지낼 때 거기서 가장 유쾌한 세계가 전개됩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만약 제가 사회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운동을 하는 것밖에 달리 할 운동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면 자연히 세상은 평화롭게 되고, 풍요로워지며 이러쿵저러쿵 말할 일들도 사라질 것입니다."

선생의 글을 읽다보면 노자가 현대에 부활한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노자 사상에 가장 가까운 이 시대의 실천가이다. 그런 모델적 삶을 발견한 것 만으로도 기쁘다. 우리나라에서도 선생의 자연농법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실천해 보는, 수익이 아니라 인류와 문명의 근원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농민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인류 문명의 새로운 혁명이 짚 한오라기에서 시작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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