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송이 같은 눈이 수북수북 쌓이는 밤이다
이런 밤, 가마솥에 포근포근한 밤고구마를 쪄내고
장광에 나가 시린 동치미를 쪼개오는 여인이 있었다
이런 밤엔 윗길 아랫길 다 끊겨도
강변 미루나무는 무장무장 하늘로 길을 세우리
- 동안거(冬安居) / 고재종
겨울이면 깊숙한 숲 속에서 갇히고 싶다. 산골 외딴집에 목화송이 같은 눈이 지붕까지 쌓이면 저절로 안거(安居)에 들 수밖에 없으리라. 지상의 끊어진 길을 반기며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으리. 그렇게 무장무장 하늘로 오르는 길을 꿈꾸리. 한두 달 그렇게 지내면 나에게도 뽀얀 새 살이 돋아나지 않을까. 봄과 함께 연초록 새싹도 피어나지 않을까.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을 얻다 / 나희덕 (2) | 2012.01.25 |
---|---|
숨막히는 열차 속 / 신경림 (2) | 2012.01.15 |
새해를 향하여 / 임영조 (0) | 2012.01.01 |
황홀한 국수 / 고영민 (0) | 2011.12.23 |
혜화경찰서에서 / 송경동 (0) | 2011.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