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받는다
서설처럼 차고 빛부신
희망의 백지 한 장
누구나 공평하게 새로 받는다
이 순백의 반듯한 여백 위에
무엇이든 시작하면 잘될 것 같아
가슴 설레는 시험지 한 장
절대로 여벌은 없다
나는 또 무엇부터 적을까?
소학교 운동회날 억지로
스타트 라인에 선 아이처럼
도무지 난감하고 두렵다
이번만은 기필코.....
인생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건강에 대하여
몇번씩 고쳐 쓰는 답안지
그러나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재수인가? 삼수인가?
아니면 영원한 未知修인가?
문득 내 나이가 무겁다
창문 밖 늙은 감나무 위엔
새 조끼를 입고 온 까치 한 쌍
까작까작 안부를 묻는다, 내내
소식 없던 친구의 연하장처럼
근하 신년! 해피 뉴 이어!
- 새해를 향하여 / 임영조
나이 예순으로 맞는 새해는 무겁다. 하얀 백지로 받은 시험지 한 장이 더는 설레지 않는다. 아무리 애써도 결국은 지저분한 낙서로 가득 찰 뿐이라는 걸 쉰 번이 넘는 시행착오로 깨닫게 된 걸까. 새로이 선물로 주어진 365일, 도무지 난감하고 두렵다. 소학교 운동회날 억지로 스타트 라인에 선 아이처럼. 그래도 휴대폰으로 들어오는 벗들의 축하 인사로 간신히 새해는 새해다. 근하신년! 해피 뉴 이어!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숨막히는 열차 속 / 신경림 (2) | 2012.01.15 |
---|---|
동안거 / 고재종 (0) | 2012.01.08 |
황홀한 국수 / 고영민 (0) | 2011.12.23 |
혜화경찰서에서 / 송경동 (0) | 2011.12.16 |
능금 / 김환식 (2) | 2011.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