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이나 창평 어디쯤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저씨는 숫돌에 낫을 갈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밭에서 막 들어온 듯 머릿수건이 촉촉했다.
-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 있을 곳이 필요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키자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깃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 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 방을 얻다 / 나희덕
나도 조용한 방이 필요하다. 산골의 작은 시골집이면 더욱 좋겠다. 지금 이리저리 알아보는 중이다. 그러나 매매가 아니라 전세로 구하려니 쉽지 않다. 따뜻해지면 시인처럼 발품이라도 팔아야겠다. 이 집에서 한 삼 년 정도는 살아보려 했는데 주변 여건이 자꾸 등을 떠민다. 도리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디 있을까, 내따스한 거기는. 좋은 인연이 남몰래 미소 지으며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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