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꽃은 왜 아름다운가

샌. 2007. 9. 20. 11:49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보면 공장에서 인공수정으로 만들어지는 노동자 계급의 유아들에게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없애버리기 위해 조건반사 학습을 시키는 게 나온다. 삭막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기르다가 화분에 꽂힌 꽃을 보여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방긋 웃으며 엉금거리며꽃을 향해 기어간다. 이때 바닥의 철판에 전기를 흘려보내 아이들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면 아이들은 놀라서 자지러지게 운다.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 학습시키면 아이들은 꽃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거부감을 갖게 된다. 자연을 동경하는 감수성이 매말라버리는 것이다. 평생을 공장에서 육체노동에 만족하며 살아갈 충직한 노동자는 이렇게 양성된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얼마 전 TV에서 꽃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꽃에 대하는 사람들 반응이 하나 같이 모두가 기쁨과 행복감을 느꼈다. 다른 대상보다도 꽃이 얼굴에 제일 강렬한 미소를 띄게 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 더욱 그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과연 꽃의 무엇이 사람들을 그렇게 감동시키는지 우리 야생화를 만나러 다닐 때마다 가지게 되는 의문이었다. 꽃과 사람 사이에는 유전자에 내재된 본능적 끌림이 있는 것 같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동물과 달리 식물은 생식기를 통째로 드러내놓고 그것을 가장 아름답게 장식한다. 그런데 꽃으로 유혹하려는 대상는 사람이 아니라 벌이다. 그래서 꽃의 진화는 벌에게 가장 매혹적으로 보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벌보다 오히려 사람이 더 꽃에 매료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에게 아름답게 보이면 꺾이는 수난을 겪을 것 같은데도, 묘하게 꽃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인간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아니면 인간의 손을 빌려 번식하려는 고단수의 작전일지도 모른다.

벌이 꽃을 찾는 것은 꿀을 얻기 위해서이다. 반면에 인간은 심미적이고 정서적 차원에서 꽃을 좋아한다. 인간 외에 다른 동물이 꽃에 대해 독특한 반응을 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인간과 꽃의 특수한 관계는 벌이 보는 꽃의 상과 인간이 보는 상은 서로 다르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벌은 붉은색 계열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꽃에는 붉은색이 아주 많다. 꽃은 분명 누군가의 눈에 쉽게 뜨이도록 자신을 단장했을 것이다.

왜 인간의 눈에 꽃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까? TV에서는 꽃의 기하학적인 미를 제일 중요한 원인으로 제시했다. 꽃잎과 수술, 암술이 이루는 구성미가 색채 효과와 함께 완벽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 보는 꽃잎의 수에도 그 비밀이 숨어있다고 한다. 1, 2, 3, 5, 8, 13, 21, 34.... 앞의 숫자를 더해서 만들어지는 이 수열을 피보나치 수열이라고 하는데, 꽃잎의 수는 이 숫자와 일치한다고 한다. 내가 찍은 꽃사진으로 확인해 보니 일부 예외도 있지만 대체로 맞는 말이었다. 다섯 장짜리 꽃잎이 제일 많은데, 여섯 장이나 일곱 장 꽃은 거의 보기 힘들었다. 피보나치 수열에서 뒤의 숫자를 앞의 숫자로 나누면 황금비율값이 나오는데, 꽃잎 숫자가 이 수열값을 따른다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다.

이런 과학적 해석이 꽃의 아름다움의 비밀을 해명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인간이 꽃에 대해서 느끼는 특별한 감정에는 뭔가 다른이유가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꽃을 통해서 인간은 우주의 어떤 근원적인 아름다움과 접촉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꽃의 이미지에는 인간 내면세계의 깊숙한 영역과 동조하는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단순한 표면적 아름다움이 인간을 그렇게 매혹시킬 수는 없다. 나는 오늘도 꽃을 보며 묻는다. 너는 왜 그렇게 예쁘고 아름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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