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입시교육의 비극

샌. 2007. 10. 5. 12:13

지난 추석 연휴 때에 생긴 일이다. 서울의 모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 담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 지금 어디서 무엇 하고 있냐?"

"집 앞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데요."

"지금 당장 학교 독서실로 나와!"

사연인즉, 추석 연휴 기간에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 나오셨단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적은 것을 보고 '왜 이 모양이냐'는 한 마디에 담임들이 비상이 걸린 것이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는 추석이고 친척이고 아무 의미가 없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중간고사를 추석 연휴 뒤에 보도록 일정이 짜여 있다. 고등학생들에게 추석 연휴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노는데 시험 준비에 몰두해야 하니 도리어 휴일이 싫다. 그런 휴일을 제공한 추석도 귀찮기만 하다. 귀향을 해도 고등학생은 부모와 동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것이 우리 한국 교육의 모순이고 위선이다. 교육목표상으로는 효(孝)와 우애(友愛)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거짓과 위선을 우선 배운다. 어른들의 실적과 겉치레에 멍드는 것은 아이들이다. 이래 놓고 어찌 학교에서 인간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랄 것인가.

모두들 교육의 전문가인 한국의 학부모들이 항의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대목들이다. 교사가 유능한 학원 강사가 되길 바라고, 과정이야 어떻든 아이를 유명 대학에만 합격시켜주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이라면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의 근본부터 차분히 생각해 주길 부탁하고 싶다.

고등학교가 이미 입시학원으로 변해버린 현실을 부정하긴 힘들다. 사회나 학부모들의 그런 방향으로의 요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그래서 교육의 근본자리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경쟁보다는 협동과 공생이 오히려 생물계의 원리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원리에 반하는 지나친 경쟁이 인간 심성을 황폐화시키는 현실이 두렵다. 특히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폐해는 심각하다.

교육의 위기를 느낀 몇 교사들이 팀을 만들어 학교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러나 여러 번의 모임을 갖고 고민을 해 보았지만 막막하다고 한다. 그분의 심정이 세상의 거대한 벽 앞에서 느끼는 막막함이 아닐까고 추측해 본다. 제 자리를 잃은 한국 교육 앞에서 안타깝기만 할 뿐 나로서도 그저 대책 없이 막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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