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펌] 아버지 하느님 엄마 하느님

샌. 2007. 10. 7. 08:25

청년들은 겸연쩍게 제 고민을 털어놓는다. 교회가 잘못된 게 참 많은데 비판을 하자니 목회자나 교회에 순종하지 않는 게 신앙적으로 올바르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대답한다. “다니는 곳이 교회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해보세요. 십자가 단 건물에 강대상 놓고 예배 본다고 교회는 아니니까요. 만일 교회가 아니라면 고민할 이유가 없어요. 예루살렘 성전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쓰게 웃으며 한 말 기억하지요? ‘나는 분명히 말한다.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마태 24) 바로 우리에게 한 말입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대개 ‘윤리적 타락’이라는 면에서 해석되곤 한다. 교회가 개혁되면 해결된다는 이야기다. 나는 교회개혁 운동의 열정을 진심으로 존중하지만 그 운동이 한국 교회들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늘 대개의 한국 교회들은 ‘타락한 교회’가 아니라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행여 발끈할 건 없다. 나는 이치에 맞는 비판은 ‘인간의 생각’이라 방어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제 생각은 ‘하느님의 뜻’이라 강변하는 사람들과 핏대 올릴 생각은 전혀 없으니 말이다. 그저 딱 한 가지만 함께 짚어보자. 오늘 한국 교회가 모시는 하느님은 과연 예수가 말한 하느님과 같은 하느님인가?


성서를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구약의 하느님과 예수의 하느님은 많이 다르다. 구약의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민족신으로서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대에까지 갚는다”(출애굽기 20:5)라고 대놓고 말하는 하느님이다. 구약의 하느님은 자기를 섬기는 놈은 어떤 악행을 해도 축복하고 자기를 거스르는 놈은 바로 살아도 저주하고 징벌하는, 권위적이며 포악한 마초 아버지 하느님이다. 바로 오늘 팔레스타인 인민들을 일없이 죽이는 극우 시온주의자들의 하느님 말이다.


예수는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선포했다. 예수의 하느님은 잘나고 힘세며 늘 승리하는 자식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는 못나고 약하고 늘 지기만 하는 자식 걱정에 잠을 못 이루며 그가 사람 대접 받으며 살길 갈망하는 하느님, 엄마 하느님이다. 죄를 후손 삼대에까지 갚고 마는 하느님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며 뉘우치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하느님,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체면도 품위도 잃어버린 사람들 앞에서 고상한 말이나 쓰며 으스대는 놈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 야단치는 하느님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 속에 우주가 있고 또 우주가 그 사람의 영혼과 함께 맞물려 작동한다는 걸 깨우치게 하는 하느님이다.


예수와 예루살렘 성전체제와의 충돌은 결국 두 하느님의 충돌이었다. 새로운 하느님, 엄마 하느님은 인민들에겐 후천 세상이 왔음을 알리는 복음이었지만 옛 하느님을 섬기며 온갖 영화를 누리던 자들에겐 끔찍한 재앙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죽여야만 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생겨난 지 2천 년, 오늘 한국 교회의 하느님은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인 자들의 하느님이다. 오늘 양식 있는 사람들은 한국 교회에 분노한다. 그러나 그 하느님 앞에서 그 분노는 어리석은 것이다. 미국은 하느님을 섬겨 축복받았고 아랍인들은 우상을 섬겨 벌을 받는 거라는, 침략전쟁이 거룩한 성전이라는 주장은 그 하느님 앞에서 전적으로 옳다. 부자와 권력자들의 사교클럽으로서 강남의 대형교회들은 그 하느님 앞에서 가장 축복받은 교회들이다.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건으로 불거진 몹쓸 해외선교 방식도 그 하느님 앞에서 한 치도 부끄러울 게 없다. 양심이라는 유전자가 처음부터 없는 듯한 어느 독실한 기독교인 대통령 후보 역시 그 하느님 앞에선 크게 쓰임 받아 마땅한 사람일 뿐이다.


한국의 밤 풍경은 붉은 네온 십자가로 가득하다. 그 십자가 십자가마다 예수가, 엄마 하느님이 피 흘리며 달려 있다.

 

- '한겨레 21'에서, 김규항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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