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학력 위조를 권하는 사회

샌. 2007. 9. 13. 11:13

사회 유력인사들의 학력 위조 파문이 결국 권력층의 도덕성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사건은 학력 위조로 미국으로 도피한 미모의 여성 S씨와 청와대 비서관 B씨와의 부적절한 관계로까지 연결되어 세인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인간 역사의 어느 시기에나 사람들이 모여드는 중심에는 권력과 돈이 있었다. 학력을 위조해서라도 얻으려 하는 것이 결국은 이 둘인 것이다. 남자의 경우에 이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여자는 저절로 모여든다. 하물며 그 모든 것을 갖춘 남자의 경우야 드러난 것이 어찌 전부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연신 터져 나오는 잘난 사람들의 가짜 학력 소동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시사해준다.


우리 사회는 학력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아무리 해도 근절되지 않는 과잉교육열 또한 여기서 유래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명문대학 졸업장을 문화화폐라고 불렀다. 좋은 학교를 나왔다는 것은 영달의 길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권력과 재화에 근접해 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되며, 동시에 좋은 배우자를 얻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입신출세를 위하여 기를 쓰고 명문학교에 적을 두려 한다. 그 처절한 노력을 비난하기도 어렵다. 그 길 외에는 신분 상승을 하는 다른 길들이 열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는 교육에 대한 대중의 이런 열망을 이용해서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착한 국민을 만들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학력을 위조해서라도 출세를 하려는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학력사회에서는 그런 자격증이 없다면 사람 취급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에 가짜 자격증일망정 사람들은 껍데기를 보고 능력을 판단한다. 그것은 넓은 평수의 아파트, 큰 차로 사람을 평가하는 못된 버릇과 일맥상통한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풍조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런 껍데기 사회, 학력 위주 사회에서 학력을 위조하려는 유혹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상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가짜 행세를 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어찌 보면 이해가 된다. 한국인의 80%가 학력을 속이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물론 잘못된 행위는 비난 받아야 하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그런 부도덕한 사람을 만들어내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요사이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에 대해 변명할 마음은 없지만, 3년 전에 일어났던 모 국회의원의 학력 위조 파문은 지금도 아쉽게 생각한다. 그분은 초등학교 출신으로 80년대에 빈민운동에 투신했고, 도시 빈민과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살았던 그분은 고졸 학력이라고 한 것이 굴레가 되어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구속되었다. 고졸이라고 학력을 위장한 것 치고는 사법부의 심판이 너무나 가혹했다. 이런 차가운 법 집행을 볼 때마다 뭔가 아쉽다. 그런 잣대가 왜 힘 있고 돈 있는 사람한테는 갑자기 물렁해지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가 학벌의 지엄함을 처음 느낀 것은 1977년 구로공단에 취직했을 때였다고 한다. 사무직으로 있었는데 나중에 사장이 초등학교만 나왔다는 것을 알고는 생산직으로 발령을 냈다. 학력사회에서 배우지 못한 비애를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고 한다. 그 뒤로는 자신도 모르게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나 거부 반응이 생겼다.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학력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이럴진대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싶다. 학력 때문에 받은 상처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실감하지 못할 것 같다. 그것이 또한 한국의 부모들이 악착같이 자식을 공부 시키려는 동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학벌사회를 깨뜨릴 고민이나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해서 손가락질은 쉽게 하지만 그런 사람을 낳은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보다는 불합리한 체제나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대해 더 책임을 묻는 편이다. 지금과 같은 학력사회가 유지된다면 앞으로도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근본을 바꾸지 않고 지엽적인 처방만으로 병의 근원을 치유할 수는 없다. 대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지연, 혈연, 학연 중심으로 돌아가는 틀도 깨뜨려야 한다. 성공 신화와 물질적 부, 인간의 성취욕과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물결을 거부해야 한다. 그것은 멀고먼 길이 되겠지만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이런 개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많아져야겠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학력 위조를 권하는 사회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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