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들어가니 바닥 여기저기에 휴지가 흩어져 있다. 가까운 아이에게 휴지를 줍게 했더니 “내가 왜 주워야 해요?”하면서 빤히 쳐다본다. 자신이 버리지 않았으니 주울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교사가 휴지를 주어도 아이들은 전혀 괘념하지 않는다. 수업 중에 잠자는 아이를 깨우면 왜 귀찮게 하느냐며 짜증을 낸다. 이런 모습들이 요사이 인문계 고등학교의 현실이다. 교실은 이렇게 살벌하게 변해가고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빚어낸 자업자득의 측면이 있지만 이것은 결코 어느 누구만의 탓으로 돌릴 수가 없다.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아이들이 달라지고 있다. 작년 아이들이 다르고, 올해 아이들이 다르다. 좋은 면으로 변한다면야 바람직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아이들의 심성이 황폐화되어 가는 것이 교육 현장에서는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 요사이는 예로 들기에도 무서울 정도의 일들이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이런 일들이 일부 소수의 아이들에 국한된다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병리적 현상들이 아이들에게 전염되어 전체적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예를 들면 인간성 상실, 황금만능주의, 쾌락주의, 공공의식의 결여, 사회정의의 부재 등이다. 이런 것들은 자본주의의 병폐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별나게 드러나는 것도 있다. 무균상태의 아이들은 잘못된 가치관에 노출되어 별 저항 없이 그것을 받아들인다. 가치관의 혼란 시대에 가장 피해를 보는 쪽은 아이들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것은 전통 윤리의 복원 등 도덕적 관점에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현재의 모습은 정치, 경제적 사회 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 조망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오래 전에 보았던 ‘To Sir with Love'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그 영화에 나왔던 미국 고등학교의 교실 풍경은 당시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런 교실 풍경이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아이들은 막무가내로 험해져가고 있고, 교사의 말은 이제 아이들에게 먹혀들지 않는다. 우리 학교에서도 수업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버린 학급도 있다. 그런 학급은 대개 몇몇 질 나쁜 아이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수업 시간에 그런 아이들과 싸우노라면 수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슈퍼맨의 능력을 가진 교사가 온다면 모를까, 보통의 교사들에게 이런 현실은 힘에 벅차다.
일부 특수학교를 제외하고 이런 교실의 황폐화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나라 모든 학교가 이런 고민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르면 아마 국가적인 문제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사람을 도구로 보고 효율과 경쟁을 강조했던 오류의 대가를 언젠가는 톡톡히 치러야할지 모른다. 경제논리 앞에서 우리는 인성과 윤리를 희생시켰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자본주의의 길을 맹종함으로써 우리는 사람을 잃고 있다.
며칠 전에는 여교사에게 성적 모욕이 담긴 문자를 보낸 학생들이 퇴학 처분을 받았다. 문자 는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포르노 수준의 내용이었다. 문제는 아이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느끼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학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야 봐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도덕적 마비증세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렇다고 강력한 처벌이 해결책이 되지도 못한다. 우리 모두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런 아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타나고 교실은 더욱 난장판이 될 것이다.
10년 전의 IMF가 우리 국민들에게 끼친 정신적 악영향은 예상외로 심각했던 것 같다. 자본과 경제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믿게끔 만들었다는 면에서 IMF는 우리에게 가장 악질적인 경험이었다. IMF 이후로 우리는 경제동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재테크와 투기 열풍이 21세기에 접어들며 광풍으로 몰아쳤고, 맘몬이 지고지순의 가치가 되었다. 손해 보더라도 착하게 살라는 말을 하는 부모는 찾기 힘들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다른 사람을 이기고 올라서라는 주문밖에는 없다. 돈 앞에서는 종교와 예술도 예외가 아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명제는 교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해당되는 얘기가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바른 가치관의 상실이 빚은 재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번 무너진 둑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버린다.
경쟁에서 도태된 아이들이 갈 곳은 없다. 이것은 경쟁사회의 어쩔 수 없는 짐이다. 그런 경쟁의 최일선이 학교 교실이다. 오직 소수를 위한 이런 교육시스템이라면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 어제는 주요 과목의 교내 경시대회가 있었는데 시험을 보는 아이는 한 반에서 대여섯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시험지를 받자마자 그냥 엎드려 잤다. 공부를 잘하는 소수를 위해 나머지 아이들은 오전동안 들러리를 선 것이다. 경시대회는 수업을 하고난 뒤 희망자에 한하여 시험을 볼 수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적어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교육은 없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비인간적이고 반교육적인 행위들이 서슴없이 행해지는 곳이 학교다. 아이들은 여기서 어른들의 위선과 허위를 그대로 볼 것이다. 어른들을 존경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것이 도리어 비정상일지 모른다. 예전의 아이들은 천진했지만 요사이 아이들은 정보 매체를 통해 알 것은 다 안다. 물론 개인의 잘못이나 나태함도 한 원인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본질은 놓아두고 어찌 아이들 탓만 할 수 있을 것인가.
교직자로서의 한계를 절감할 때가 가장 슬프다.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만큼 비참한 것도 없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번민은 해소되기는커녕 점점 더 깊어지기만 한다. 분필을 놓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든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험하게 흘러가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내가 이곳을 버티기 위해서도 어쩔 수 없는 나의 고집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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