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간격으로 두 딸을 시집보냈다. 연초의 상견례를 시작으로 올 한 해는 자식 결혼시키느라 바빴다. 힘들었어도 경사를 두 건이나 연이어 치렀으니 복 받았다 할 수 있다. 나이가 찬 자식을 아직 데리고 있는 사람들은 일찍 혼사를 끝낸 우리를 부러워한다. 큰일을 치르고 나니 기분이 홀가분하다.
둘 다 연애로 자기 좋아하는 짝을 찾아갔으니 서운한 게 덜 한 편이다. 잠시라도 떨어질세라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도리어 질투가 날 정도다. 그래도 엄마 마음은 다른 것 같다. 아내는 상당 기간 잠 못 들고 슬퍼하고 있다. 딸의 빈방에서 나올 때 눈가가 빨개진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 되겠지, 앞으로 아이들이 잘사는 모습을 보면 아내의 우울도 잦아들 것이다.
둘째가 신혼여행 뒤 집에 찾아와 인사하고 가면서 "아빠, 갈 게요." 할 때는 무심한 나도 울컥하는 게 있었다. 기쁘면서도 슬프다는 게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며칠 전에도 집에 다녀갔는데 떠나는 뒷모습이 아팠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게 부모 된 마음인가 보다.
옛날에는 식장에서 눈물을 찍는 신부를 흔히 보았다. 웃으면 딸을 낳는다고 놀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유분방하다. 세태가 많이 변했지만 활짝 웃는 신부의 얼굴이 더 아름답다. 밝고 행복한 표정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도 흡족할 수밖에 없다. 감사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너희들을 보낸다.
홀가분하다는 것은 자식을 보냈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식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다 끝냈기 때문이다. 내용보다는 형식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그래서 결혼식이 가족 중심의 오붓한 행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결혼하는 당사자들은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주인공들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딸을 떠나보냈지만 새 식구를 받아들인 의미도 있다. 두 사위가 더할 수 없이 미쁘면서 귀엽다. 아들을 새로 얻은 기분이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만나 좋아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인연의 신비를 생각하면 절로 경외감이 든다. 인간의 지력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오묘한 섭리에 고개가 숙여진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삶이 늘 신혼 시절처럼 달콤하기만 한 건 아니란다. 인생에는 모든 맛이 녹아있으니 쓴맛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이다. 너무 편안함만 구하지 마라. 나를 고집하기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려주는 게 행복의 비결임을 잊지 말아라. 결혼한 자식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게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이란다.
혼례라는 인생의 통과의례를 치렀다. 엄마에게서 떨어지면 큰일이 날 듯 조바심치던 아이들이 어느덧 성인이 되어 각자 짝을 구해 떠나갔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뭔지 실감이 난다. 딸을 여의고 애락(哀樂)을 맛보는 것, 이것 역시 인생을 배워가는 과정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이제 막 또 하나의 산봉우리를 넘었다. 거친 숨이 잦아들고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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