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광진구에는 서울시 기념물 2호로 지정된 나무가 있다. 화양동 110번지에 있는 이 느티나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 세종 14년(1432)에 세워진 화양정(華陽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있다. 나무 옆에는 그 위치를 알리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화양정 아래로는 말을 키우던 목장이 있어서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말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세종 임금은 이곳에 별장을 짓고 휴식을 취하곤 했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또한 세조에게 쫓겨난 단종 임금이 영월로 귀양 갈 때 하루 밤을 울며 지새웠다는 애사가 서린 곳이 화양정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화양정을 검색해 봤더니 세종 때 기록은 나오질 않고 총 14 건이 검색 된다.
‘신빈(愼嬪)이 온양으로부터 돌아오니, 세조(世祖)가 종친과 더불어 화양정에서 맞이하였다.’ - 단종 2년
‘노산군(魯山君)이 영월로 떠나가니, 임금이 환관 안노에게 명하여 화양정에서 전송하게 하였다.’ - 세조 3년
‘임금이 중궁과 세자와 더불어 화양정에 거동하여 대열(大閱)하고, 저녁에 충량포(忠良浦)에 머물렀다.’ - 세조 5년
등의 기록이 보인다.
이 나무는 높이가 28m, 가슴높이의 둘레가 7.5m에 달하며 수령은 약 700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종 임금이 여기서 지낼 때 이 나무는 함께 있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여러 임금과 고관대작들이 이 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정사를 논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사라졌지만 이 나무만은 아직도 정정하게 살아있다.
찾아간 날은 이슬비가 오락가락했다.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던 할머니들이 비가 오니까 노인정으로 자리를 피한다. 인적이 끊어진 오후, 큰 말씀 한 마디 주실 것 같지만 나무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