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젊은 날의 노트(5)

샌. 2006. 8. 10. 12:31

1977/9/2


환경을 떠나서 인간이란 생각할 수 없다. 실로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인 인간이 이토록 철저히 자연에 지배당해 있다는데 놀라울 뿐이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행복해 하는 노예처럼 인간도 그런 것인가. 두뇌의 활동, 혈액의 순환, 감정, 의지 이 모든 것이 어느 하나 독립적이며 완전한 게 있는가. 다만 우리는 그것을 이상화시켜 추상하고 있을 뿐, 한 조그만 물질이 대자연의 물질에 종속되는 관계- 그런 보이지 않는 연관이 상호 작용되고 있다. 물질이 정신을 창조하고 그것이 인간이 되다. 인간의 운명은 저 모래알이나 다름이 없다. 이것을 긍정하는 건 지극히 괴로운 일이건만 그러나 행복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닐까.

얼마나 기다렸는가, 포상 휴가라는 이름이 나의 것이 되기를.... 오늘 또 2명이 출발하는 걸 바라보며 인생은 장난이란 걸, 그래서 뜻하지 않은 헛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9일 날 출발시켜 준단다. 다시 기다려 볼 수밖에. 고달픈 기다림의 연속이다. 사실 기다림 없는 것 보다야 나을지 모르나 한 치 앞도 예견 어려운 이 생활에 괜히 살 말리는 날들이나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보내 준다니 가고 싶다.


1977/9/3


술 좀 마셨다. 석식 전 채 병장과 후 통신대 동기들과... 채 병장과는 정말 오래간만이다. 한 처부에 있으면서 계급 차이로 실히 갈등도 많았는데 - 물론 겉으로는 직접 표현할 수 있겠느냐만 - 술을 대작하니 모든 게 벗겨지는 것 같아 좋다. 같은 인간인데, 같이 군대 와 고생하는데 그렇지 않은가. 한 꺼풀만 벗기면 누구나 같은 것. 태초의 바다, 소금 냄새가 풍기는 듯 한 것을.

약간은 어리어리하다. 누구 말대로 좆같은 세상, 지리한 청춘인가. 누구 말대로 보람, 보람의 생활인가. 오전은 신병대 군법 교육 갔었다. 그 막사, 연병장을 바라보며 신병들의 땀내음을 맡으며 어깨에 힘 준 나, 아스라이 감회도 깊다. 어느덧이다. 그 곳의 동기는 상병 진급했다.

나는, 나는, 나라는 존재는? 군에 와서.... 나중에 먼 훗날에 이 글을 보겠지. 그 땐 어떤 감정일까? 현실은 이리 즐겁고 고달프다. 저 세상으로 떠난 知面도 있다. 만일에 먼 날 이 글을 읽는 내가 조소 섞인 웃음으로 맞는다면 나는 저주하리라.

인생은 타인의 불행으로 행복을 취득한다. 타인의 불행! 눈을 돌려라. 훈련병 시절, 아카시아에 애꿎은 불합격하고 나는 얼마나 그 저녁에 결심했던가! 불행한 사람,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자고, 그들을 위해 노력하자고.

세월이 지나면 다시 교단에 서리라. 상상만 해도 가슴이 부푼다. 이것은 취기의 농이 아니라 진실된 나의 마음이다. 그 때의 나를 채찍질하라. 이면에도 눈뜨는 사람이 되도록---


1977/9/4


긴 여름의 꼬리가 보인다

가을의 푸른 하늘도 보인다

증평 훈련소의 함성이 들린다

전역병들 신고 소리도 들린다

가고 온다

영원히 흐른다

물결 위에 하나 꽃잎이 되어

서럽도록 예쁜 꽃잎이 되어

팔랑 팔랑 흐른다

팔랑 팔랑 흐른다


1977/9/11


이날따라 왜 비는 내려 아픈 마음을 또 간지리는가. 포상 휴가증을 받아 쥔 친우를 떠나보내며 나는 쓸쓸이 발길을 돌린다. 외롭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서러움이다. 군대는 다 그런 것이란 재천이의 말조차 원스러이 들리고 내딛는 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내가 못나서일까? 허나 지휘관의 소이가 자꾸만 생각남은 그래서 졸병은 어찌 할 수도 없다. 성실한 자는 그 만큼의 대가가 지불되는 곳. 그러나 여긴 약은 자만이 살아 나간다. 웃을 수 있다. 나는 아픈 가슴을 앓는다. 또 생각한다. 현실 너머에 있는 신비의 법칙을, 그것을 바라보고 위로를 삼는다.


1977/9/13


한 사람이 취흥 섞인 말로 독백하는 걸 들었다. 자기가 이제 제대를 얼마 앞두고 군생활을 뒤돌아 볼 때에 좋지 못한 면으로 변한 것은 이렇다는 것. 1)욕설 2)기회주의자 3)에고이스트. 그러면서 본심은 본래 그렇지 않으니 사회 나가면 언젠간 변하리라는 희망도 피력한다. 또 인간이란 지독히 간사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환경이 어떻게 변해도 거기에 수히 적응하는 것은 어찌 그리 빠른지.

나를 생각한다. 위의 말에 이의 있을 수 없다. 나만 편하려는 생각, 완전한 에고이스트다. 그가 나에게 물었던 말 “이제 아이들에게 군생활에서 느낀 것을 하나쯤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자문해 볼 때 의문이다. 그만큼 나는 줏대라든가 주관이 없는 생활이었던 탓일까? 소위 바람이 부는 대로 그저 수월하게 지내기 위해 흘러다닌 탓인가. 자신이 불쌍해 보인다. 타인에게 큰소리치며 나를 뽐낼게 무언가 말이다. 속이 빈 공동, 나의 내부에 이런 허전함이 깃들 때가 있다. 왜곡된 사상일 망정 나의 것인 철학이 있었으면. 만들어야지. 도도한 물결을 바라보며 굳세게 서 있을 수 있게.


1977/9/14


축구, 4년만이다. 사실 대학시절 스포츠에선 남에게 빠지지는 않았지 않는가. 녹이 슨 몸 탓인지 결국 백으로 밀려 났지만 내가 보아도 한심스럽다. 끝난 뒤에 소대장이 주는 배 한 덩이의 맛, 면회 와서 주고 간 것이라는데....

집에 장기 다녀온 봉대에게서 술 앗아 먹느라 안 들을 욕도 먹으며, 내가 나를 알 수 없다는 것. 나? 한없는 의문 속으로 빠져든다. 현실적인 면에서 이상적인 면에서 나는 나를 모르고 속이며 지낸다. 한 공민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 휴식 중 교실 옆 그늘에서 쉬면서 교실에서 들리는 한 여교사의 음성과 모습- 자주 바라보는 이유를 누가 알아줄까. 불현듯 생각키우는 옛 생각, 그 아이들 그 모습들. 현재 위치와 비교하여 먼 하늘을 바라본다.

나를 믿는다. 떠든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 컴플렉스를 아니 무언가 부족한 면을 카바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평시와 다른 돌출된 행동으로 나타난다. 나는 모든 걸 긍정한다. 나의 마이너스 면도 긍정하며 그걸 나의 것으로 하기 위해 애 쓴다. 인간은 태어날 때 각자의 개성을 지녔으리라. 평균인에게 못하다고 비관할 것은 없지 않은가. 순수한 자기를 표출할 수 있다는 것, 사회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자기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은 그 인격의 원숙을 뜻하지 않을까?

이젠 나의 것은 나의 것으로 한다. 그것이 배척받든 신뢰받든, 술이 얼근히 오른다. 오늘 행동이 잘못 됐다면 모두에게 미안하다. 씻으러 내려가야지. 내일이 온다!


1977/9/15


채병장이 술(드라이진)을 받아 준다. 이렇게 마주 앉으면 그래도 따스한 인간끼리의 감정의 오고 감을 느낄 수 있는 게 집의 안방 이부자리에 누워 있는 것 마냥 포근하다. 그래서 술이란 좋다. 며칠 전 어느 잡지에서 본 귀절 ‘多酒學仙 無酒學佛’의 첫 귀절에 고개가 끄덕여 지는가. 지금 생각하기엔 윗말은 이래도 저래도 만족스러운 인생살이를 뜻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하튼 맹맹한 정신 속의 현실은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만은 틀림없다. 쓴 한 잔은 그 가면을 벗긴다. 서로가 나체가 되어 인간 자체에 미소 짓는다. 주고받는 한 잔 술과 한 대의 담배, 이어지는 우정.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 자신을 지키는 게 문제다. 자신을 잃는 것만큼 불행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자기의 모든 것에 만족하며 자기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생활에 승리 있으라!


1977/9/16


새벽 5시, 5분 대기조 비상 출동. 뒷산을 오르며 여명의 산하가 가슴 저리게 안긴다. 밝아오는 하늘. 아직도 검은 산들의 골짜기 사이로 비단 같은 안개가 굽이굽이 감돌고 연노란 들판이 포근히 잠들어 있다. 한 폭의 동양화. 정상에 오르다. 막 튀어 나오려는 태양의 빛은 구름을 붉게 물들인다. 장엄하다. 여인의 해산의 순간 마냥 엄숙하며 가슴이 뛴다. 순간순간의 변화가 놀랍다.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다.


새벽을 기다리며 맞는다. 출동이 있어 한 밤중 뫼에 올라 잠자는 숲의 숨소리를 듣는다. -中略- 이젠 하루의 의미를 알 듯도 하다. 지겨운 반복이 아니라 매분 매초가 새로운 창조의 순간이라는 것을. 가을이다. 어느 시에 ‘봄 바람은 안기기 잘하는 나비, 가을 바람은 울기 잘하는 송아지’라고 했는데 가을이 주는 이미지는 왜 이리 쓸쓸할까. -中略- 多酒學仙 無酒學佛 이제 해가 지면 신선놀음이나 배워야 겠다. 지난 여름 원색의 피서객들 사이를 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리며 우린 조국과 연애해 왔다.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末略-


1977/9/20


左로 보나 右로 보나 軍生活은 苦行의 意味를 띄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가 쉽게든 어렵게든 살아나간다는데 人間의 강인함(간사함인지도 모른다)을 발견한다. 苦行은 原語로 tapas 즉 五熱의 뜻이란다. 40℃가 넘는 속에서 四方에 또 불을 피우고 參禪한데서 나온 이름인가 보다. 自身에게 自信을 갖도록 努力한다. 훈련소 때 받았던 첫 편지; 한 제자의 말을 기억한다. <모든 것은 瞬間이다>.


1977/9/21


용아

너로 부터 소식이 끊어진지도 3개월이 넘는다. 마지막 편지에서 군대 생활 끝내주는 곳으로 갈지 모른다고 하더니 그게 소원 성취된 것이냐. 그래서 나 은 존재는 잊어버린 것이냐. 아니면 너의 그 괴퍅스러운 철학이 다시 발동하여 속세의 인연과는 완전히 절연하겠다는 것이냐. 재작년이지.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직장 생활로 진입했을 때 넌 근 10개월 가까이 얼굴 한 번 내밀지 않았었지. 대학 시절 매일 만나는 우리였지만, 심심하면 찾아가 만나고 차 마시고, 그러면서 서로의 우정의 탑을 쌓아가지 않았었냐.

그러나 나는 믿는다. 넌 존경할 만한 세계를 건축하면서 거기의 성주가 되어 뒤지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그런 너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차라리 자랑하고프다. 전번 편지에도 썼었지만 생활에 승리 있어라. 나도 노력하리라.


성화에게

오늘부터 갑자기 싸늘해지는구나. 달력 몇 장이 하룻밤새 넘어가 버렸는지 이런 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갖가지 상념이 명멸하곤 한다. 또한 저 넓고 아름다운 우주의 신비감에 비해 자신의 초라함이 더욱 돋보여 더 이상 위를 바라 볼 용기조차 잃어버릴 때가 있다. 어제는 야전 무대 공연이 있었는데 문득 자네 생각이 나더구만. 허나 전선에서 극기하며 생활하고 있는 자네 모습이 저 번쩍이는 조명등 속의 율동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일세. 오해하지는 말지니 도리여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사실 자네를 위하여 가을에 관한 멋진 시를 준비했었네. 소개하기엔 계절이 너무 빠르군. 유감이네.

자칭 도사가 그 학교 주소도 모르다니 어이 된 일인가. 성이가 실망하겠네. 자책하시도록. 대자연과 함께 멋진 추억을 만들게나. 건강을 빌면서.


1977/9/25


일요일. 숙소를 지키는 일요일이다. 얼마나 마음 편하냐. 채병장 유격, 박병장 출장, 참모님 추석까지 외박, 꼬래비가 왕이 되었다. 동전 한 닢 가진 게 없으니 욕심도 없고, 자고 싶으면 자고, 책보고 싶으면 책 보고, 팽창된 자유를 포식한다. 항상 긴장된 생활. 그것이 쌓여 쌓여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고 욕구 불만 상태에서 넘기는 생활. 그렇다. 누구나가 하루해가 넘어가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군 내부에서는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치 못한다. 왜냐하면 접촉하는 모두가 그런 상황이니까.

며칠 전 사격 대회에서 동기를 만나 소총 소대의 얘기 듣다. 거기서 내가 적응하여 제대로 해낼까, 처음으로 회의 비슷한 것이 인다. 만족과 불만의 양 평행선을 밟으며 무난한 군생활을 해야겠지. 현실에, 외적 환경에 너무 빠져 들어선 안된다고 나를 타이른다. (성경구절 St. Paul의 말씀 ‘....그런 것 같지 않게’)


1977/9/27


<추석 모닝>

추석이 밝았다. 눈을 뜨니 창으로 비쳐든 햇살이 방 안에 가득차 있다. 잠은 깼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다. 사각형으로 나누어진 천정의 한 부분이 텔레비 화면이 되어 어머님의 모습이 나타났다간 사라져간다. 어머님 전상서, 어머님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길고도 절절한 내용의 편지를 띄워 보내고도 싶다. 입대하여 두 번째 맞는 추석이다. 처음은 훈련소 때 였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도시 기억이 안 난다. 누구에겐가 세월을 완전히 도둑맞은 듯 기억 안 나는 과거는 그리 씁쓸할 수가 없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꽃이 피고 코스모스가 청초함에 흘러흘러 다시 돌아온 명절. “올 수 있다면 추석 때 한 번 다녀가거라” 잊어졌던 어머님 말씀이 이제사 되살아나 못난 아들의 바람을 또 한번 부치게 된다. “어머님 이 명절 즐거이 보내십시오.”

이제는 일어나서 숙소 청소를 하고 아침밥을 지어 먹어야겠다. 옆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가 낭낭하다. 홀로, 누구도 없이 만나는 기쁨 후미진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같이 기뻐한다. 이젠 혼자가 아니다. 이 명절이 나와 함께 하고 있으니.


<추석 이브닝>

맑은 낮이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에 간간이 때때옷으로 차려입은 꼬마 애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무엇인가를 들고 갈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에게서 문득 명절을 느낀다. 회관에서 텁텁한 막걸리로 명절 기분이랄까, 消時하던차 얼마 전 휴가 귀대한 유싸이클을 만나다. 그 때 한 구석에선 요란하게 꽃이 피어 있었다. 은어로 7리 아가씨들, 추석에 부대 나들이라. 한복으로, 양장으로 정장을 하신 모습들이라 처음엔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하기사 내 생각이 2차원적 사고방식이었나 보다. 7리 아가씨하면 번득 떠오르는 그런 유형- 그런 통속적인 사고에 휘말려 들었기 때문이지.

답답하던 차 밖 잔디에 나와 누워 그런 저런 얘기 나누다. 하늘도 푸르고 잔디도 푸르고 이 몸 로맨틱하지 않느냐. 그러나 주고받는 얘기는 도시 군대 생활뿐이라 썩이나 황량했지만 얼굴만 보아도 즐거운 동기에게서랴 무엇이 문제되겠는가.

하튼 한복 아가씨로 부터 오란씨 한 병을 고맙게 먹었다. 보내고 난 뒤 나를 책망한다. 단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인간을 낮게 평가하고 그래서 마치 인형이나 되는 양 놀이개감으로 상대했던 나 자신이 이리 저주스러워질 수가 있을까. 화려하고 멋들어진 의복 속에 병들어 썩어가는 마음을 보면 우울해 진다. 그러나 그들을 사랑할 순 있다. 왜 그럴까, 산 밑 모래 푸석한 땅에 애처로이 달려있는 초라한 코스모스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은....


1977/9/28


형이상학적 고뇌보다도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데 따른 형이하학적 괴로움이 밀려 올 때면 그건 십종팔구 나 자신의 부족함으로 귀착되어 쓸쓸이 방바닥에 나뒹굴어진 나를 보게 된다.

오늘만 해도, 딴 사람 면회 온 한 아가씨를 만나 용감하게 허식을 차려서 차 한 잔 얻어먹은 것까진 좋았는데 역시 오래 앉아 있을수록 밑천은 동이 나감을 그래서 안절부절하게 됨을 느껴 씁쓸히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여자를 보고 침을 흘림은 이 여건 속에서야 어쩔 수 없다. 한 사실은 여성을 보는 관점이랄까 그런 게 많이도 변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남성과 합일하여 완성된 인격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여성, 숨겨진 여성의 미에 차차 눈이 떠지는 듯 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요, 경험을 통해서 인간은 자아를 완성할 수 있다고 볼 때 나 자신의 부족을 깨달은 것은 그리 자책할 필요야 없겠다.


1977/9/30


동생에게 엽서 써보다. 유난히 적어보고 싶고 하여 그럴 때면 쓰여지는 문장에 취하여 내가 문장을 만드는지 문장이 나를 만드는지, 하여튼 잡된 것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 흰 런닝샤쓰를 세탁하여 밖 줄에 널어놓았는데 저녁에 보니 없어졌다. 또 누가 들고 갔나보다. 그런 것에 심상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몰래 갖고 간 그 어떤 젊음이 못내 불쌍할 뿐이다.

요사이 며칠간은 여복이 있어 좋았고 또한 마음에 드는 글귀를 발견한 게 여간 기쁘지 않다. 9월의 마지막이다. 내일이면 10월 1일인데 일 년 전의 이 날과 일 년 후의 이 날을 떠올리며 잠잠한 가운데 하루를 보낸다.


내무반=젊음이 모인 교실

1.젊음-모든 사실 여기에 合流. 우리는 뭉칠 수 共感할 수 있다

2.교실-軍 3年, 人生의 에누리. 안 된다, 人生을 배우는 道場이다


1977/10/2


女子다운 것은 소용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다만 人間다운 女子면 女子다운 女子라 하겠다.


1977/10/3


내일이면 그 요란한 유격에 들어가게 된다. 3일간 계속되었던 연휴였는데 오늘 저녁엔 한어린 말이 절로 튀어나와 나를 당황케 한다. “×같은 세상, ××이 ×보다 더 보기 싫은 세상” 차라리 산에 올라 열나게 땀 흘리고 뛰고 기고 싶다.

요사이는 수필을 본다. 그러면서 자연은 수필과 많이 닮았다고 느낀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그 구름의 풍성함. 천둥치고 번개 번쩍이는 마치 이 세상을 날려 버릴 듯 요란한 바람 속의 밤. 그 한가운데 서면 왜 그리 자연이 아름다운지!

지난 지난 그 밤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새벽의 그 장엄함이며 저녁 석양의 애절한 흐느낌도 가슴을 흥분시킨다. 도취된 이 마음은 내무반에서 적응하기 힘든 폐단도 있는데 들리는 조잡하고 속된 낱말들, 하등적인 생각들에 귀를 막을라치면 갑자기 둥 떠버린 소외된 나를 보게 되고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A라야 맞고 B는 틀리다 식의 수학적 논리를 인간에게까지 적용하고야 싶지 않다. 모든 것을 긍정하면서 나를 지킨다는 게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게 아무래도 오만한 자의 자기변명 밖에 되지 않는 듯 싶어서이다. 발은 땅을 디디고 머리는 하늘을 향하는게 인간이듯이 그래서 별을 바라보면서도 허방에 빠지지 않고 걷는다는 것, 그게 나의 살아나갈 방향인 것만 같다.

목이 긴 사슴은 슬퍼 보이고, 땅을 파는 두더지는 천해 보인다. 무엇에든 미쳐보는 삶을 원하면서도 지반이 흔들거려 곧 쓰러지고 말듯 나에겐 그 반대도 또한 역겨워 자조 후엔 방황하고 만다. 그러나 지극히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꺼지지 않고 있다. 그 불이 언젠가 나를 융해시키고 조형하여 아름다운 한 모양을 갖추게 하리라. 그래서 지금도 바보 같은 나를 원하며 똑똑한 바보가 되기를 희구한다.


1977/10/4


<유격 하루>

산에서 야영이다. 초목은 막 붉게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는 험준한 산악의 골짜기에서 일찍 져가는 태양의 그림자를 받으며 손수 텐트를 치고 야숙 준비를 할 때.... 지급받은 유격복을 입고 저녁을 타먹으러 반합을 든 그 모습, 헤어지고 깁고 몇 차례 했을까 꼭 거지꼴이다. 자기 모습은 잊은채 옆 전우의 그 잘난 모습을 보고 킥킥될 때.....


<동기 A>

훈련소 땐 한 쪽 팔이 아프다고 언제나 울상에 비리비리한 기억밖에 없는데 지금은 조교로서 빨간 캪에 마치 서부영화의 무법자 조끼 같은 걸 입고 앞에 서서 폼을 잡는 게 무시무시하다. 구령 소리는 언제 저리 숙달되었나. 튀어 나오는 침방울이 햇살에 부딪쳐 무지개하도 생길 듯하다. 문득 알리의 라이트 펀치에 포먼의 휘어진 머리 주위로 비산하던 땀방울의 잔인하게 아름다운 사진이 생각 키운다. 사람 되었네, 자식.


<동기 B>

보고 싶었던 놈이었는데 막상 얼굴을 대하니 그리 반가울 수가 없구나. 거의 1년 가까이 되니까. 그런데 놈은 조교, 나는 피교육생. 눈알 돌려도 무슨 변 당할지 모르는 처지에 어찌 할 수도 없다. 놈도 알아보았는데 도시 표정이 없으니 작달막하고 예술적인 마스크와는 여간 어울리지가 않아 푹 웃음이 나올 것만 같다. 군장 검사 때는 이놈이 내 담당이 되어서 앞에 오더니 씩- 웃는다. 그래 반갑다. 우리 언제 동동주나 한 잔 마시자. 서로의 미소 속에 이런 인사가 교환되었다. 그 몇 시간 후 난 불려 귀대하고 그 놈 얼굴 다시 한 번 더 보기도 이젠 글러 버렸다. 언제 전화나 하여 그 땐 호탕하게 웃으리라. 이 놈아, 내 앞에서 그렇게 어깨 힘주기냐. 언제 들르거라. 막걸리로 회포를 풀자.


<행군>

이것이야말로 신나는 일이다. 완전 군장에 행군 종대로 행진할 때면 도시 두려울 것이란 없다. 흐르는 땀마저 설탕 맛이고 비포장도로의 자욱한 먼지도 무조건 신난다. 왕이 된 기분이 이럴까? 언젠가 빙점 작가의 글에서 비를 맞으며 행군하는 군인들을 바라보면 삶의 아름다움을 절감한다고 쓴 걸 읽으며 공감한 적이 있는데 그 작가는 어찌 그리 날카롭게 관찰했는지 절로 감탄이 인다.

나에게서 행군은 삶의 의욕을 일깨워 준다. 그저 젊음을 사랑하고 싶어진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나는 생명을 짊어지고 전진한다. 전진하는 인생, 행군에서 만큼 실감하는 때가 또 언제 있을 것인가! 행군시에는 또한 온갖 명랑한 상상이 찾아들고 나간다. 이대로 서울 거리를 들어서서 아이들의 박수를 받는 영웅적인 내가 되기도 하고, 미래 어느 때 지금을 회상하며 감개무량해 있을 중년의 내가 되기도 한다. 행군은 한 계단 한 계단 차곡 차곡 나아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욕심이 있을 수 없다. 복권의 행운을 잡으려는 요행심이나 남을 망하게 하고서라도 벼락부자가 되려는 이기심이 있는 자에게 또한 행군은 얼마나 가르쳐 주는 것이 많으냐.

장시간의 행군은 인내심을 길러 준다. 구보는 순간적인 難의 돌파지만 행군은 끝없이 자기를 채찍질하며 나아가는 즉 극기의 경험을 맛보게 한다. 휴식의 진미는 행군에서만 얻을 수 있다. 천근같이 짓눌리는 베낭을 풀고 베개 삼아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 거기에 담배 한 개비의 맛이며 불어오는 바람의 향기에 취할 때 먼지 모래길에 누웠을 망정 구중 대궐 침실이 이보다 더 안온하랴. 행군은 인생 그 자체인 듯 하다. 그래서 그걸 더욱 사랑하는 것일까.


1977/10/5


요사이 가을 날씨를 맞이하여 그동안 法務參謀任을 비롯하여 同僚 軍人들 다같이 無事히 軍人 生活에 熱中하고 있겠지. 27日은 秋夕 名節 서울 永根가 다녀갖지마는 역시 마음 한 쪽에 너의 생각 잊을 수 없드구나.

여기 시골에 있는 너의 父母는 몸 健康히 農事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24日에는 누예고치 販賣도 맞치고 25, 26 兩日간에는 갱변논과 안마을 논의 나락 베기도 完了하였다. 今年 農事는 豊作같으나 政府 買上量이 적어서 穀價下落이 염려가 되는구나. 10月 2日頃에는 部隊까지 永根가 面會갈 計劃이나 혹시 10月은 1,2,3 連休여서 一時 休暇라도 얻어 서울에 나올 수 있었겠는지.

너도 軍隊 生活 1年의 歲月이 지낫구나. 그간의 軍人 生活의 經驗을 土臺로 하여 指揮官의 命令에 絶對 복종하고 同僚 軍人과도 相互 親睦을 圖謀하여 圓滿한 軍人이 되여주기 바란다. 끝으로 몸조심을 부탁하면서. 9.29


1977/10/12


술을 무슨 말로 찬양할까. 한 잔 술에 취하여 얼근해지면 모든 것은 나로 부터 달아나 버린다. 그리고 새 것이 찾아든다. 그것은 그렇게 좋은 것. 하늘의 반짝이는 별의 한 친구가 얘기를 건네주는 그런 새로운 것이다. 세상은 의미를 띠고 나의 것이 된다. 풀 한 포기, 돌 하나에도 말을 건네며 나는 무엇이 되어도 그저 만족한다. 오늘 동기들에게 막걸리 대접하며 참으로 오랫만에 취하여 인간답게 지껄여 보았다. 니이체의 「인간다운, 참으로 인간다운」이라는 책을 꼭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그 책의 제목에 반한 적이 있었는데 문득 그 제명이 이때 생각남은...

술은 모든 가면을 벗기고 인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악한 자는 선하게, 선한 자는 악하게. 그래서 인간은 술자리에서는 적어도 평등하다. 술 덕분에 오늘 초번 보초 근무 중 주번 사관인 수송관에게 조인트를 맡겼지만 사상 최초로 조인트 까이는 그 역사적 순간에도 어찌 그리 만족스러운가. 내무반에 들어오니 모두가 반색하며 반긴다. 보여봐도 흠 하나 그러니 통증 하나 없다. 이건 분명 수송관에게 감사해야겠다. 그렇게 악명 높은 수송관의 조인트 까긴데. 지금 제 정신을 찾으려는 이 순간도 나는 술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드리고 싶다. 나체로 나를 드러내주는 술께...


1977/10/16


다수 사병의 통솔을 위해 소수의 장교가 있는 것인데, 실제로는 소수의 장교를 위해 다수의 사병이 존재하는 곳.


1977/10/17


하루 일과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섭니다. 왼 쪽으로 벼랑을 따라 아카시아 숲을 끼고 돌게 됩니다. 아카시아는 어딘지 쓸쓸하지만 그래도 아직 거무파란 잎을 달고 있읍니다. 노란 아카시아 잎은 내 발 밑에서 밟히고, 바람에 날려서 군데군데 무리지어 모여 있읍니다. 지금도 몇 닢 하늘하늘 떨어지는 노오란 안타까움을 보게 됩니다. 자갈길에 들어서면 훤히 시야가 트이고 오른쪽 산봉우리에 걸려 있는 태양이 주는 빠알간 석양을 맞받게 됩니다.

대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전 대기에 퍼진 석양의 엷은 빛은 은은한 가을의 정취를 맛보게 합니다. 기분은 마치 대자연속에 포근히 안긴 듯 합니다. 가을과 석양! 이 둘의 유사성에서 느끼는 조화가 있읍니다. 비록 몇 발 더 놓으면 집합이 있고 고함이 있고 갖가지 지시가 있는 그런데지만 이 순간만은 모든 것을 잊습니다.

병아리같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어제 전화기로 들려오던 동생의 목소리며 정겨웠던 출퇴근길도 생각키웁니다. 그러나 이내 내무반이 보이고 석양도 숲에 가려 싸늘한 한기가 몸을 휩쌉니다. 나는 서정주의 「벽」이란 시를 마음속에 되살립니다. ‘봄이 오면/ 벽 깨치고 나가 목 메워 울리라/ 벙어리처럼’. 그리고 심훈의 「그 날이 오면」도 나대로 해석하며 즐거워 합니다.


1977/10/20


문지방을 넘는

새악시처럼

그렇게 겨울은 오고 있다

기대어 이 계절을 듣는다

둔탁한 음향

북을 두다리는 고수의 단조로운 손놀림

바람은 지금

태초를 통하여 불어 불어 가슴을 뚫는다

바람을 앓는 사람들, 사람들

찾아온 동생에게도 상처는 있어

나의 아픔 속을 또 바람은 헤집는다

잔인한 계절 앞에서 찢기어진 우리의 分身은

어느 봄 날 다시 환희의 송가라도 불러 볼 수 있을까


1977/10/21


하늘에는 별이 빛을 발하고 있다. 반달이 반사하는 빛의 어스름이 길을 야광인 양 또한 빛나게 한다. 술이 들어간 이 마음도 전에 없이 빛난다. 삶이란 왜 이리 아름다운지, 차라리 슬프디 슬픈 아름다움이어라. 미지의 신에게 감사드리며 나는 기쁜 마음으로 길을 걷는다. 一盃通大道 一斗合自然에 부끄러우나마 동조하면서 나는 그저 나 자체로서 이리 기쁜 것을.

사실 오후는 하기식 후 되지 않은 놈들과 보좌관의 눈총을 받으며 구보 기압을 받았다. 모든 게 별거 아니었는데 기압에 동참했던 우리 사병에게서 나는 얼마나 환멸을 느꼈는지, 인간이 이리 추잡하게 보이기는 과거를 되살려 그리 기억에 없다. 인간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고 싶은 나의 바람! 막걸리를 헐떡이며 들이키며 나는 낭만을 찾는다. 가족들, 가르치던 아이들, 전우들, 그리고 나. 이 영상들이 겹쳐 뇌리에 떠오르는 걸 의식하며 나는 모든 걸 사랑하고프다. 참으로 인간답게 살고프다.


1977/11/5


아버님 저는 당신의 아들로서 당신의 철학을 발견코 기뻐합니다. 나에게도 나를 지극히 사랑해 주시는 아버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전 무한한 풍족감을 느끼고 있읍니다. 거기에 이젠 저도 아버님을 자랑할 수 있음에 이건 나의 생애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순간일 겁니다.


1977/11/6


모든 것에 있어 人間的인 것은 모두 무너져가고 있는 거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며(견디어가며)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나를 살기 위해서) 눈을 작게 뜨고, 귀를 좁게 막고, 머리를 고독한 영원에 두고, 세상을 덤덤하게 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는 거다. 1/10의 눈으로 신문을 읽고, 1/10의 귀로 세상을 듣고, 10/10으로 나는 내 스스로를 응시하고 있는 거다.


1977/11/13


숙소 생활 하루가 지난다. 점심때 들어갔더니 부대가 요란하다. 그 회오리에 휘말리지 않게 됨을 다행으로 여긴다. 이제 더불어 출퇴근하며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고 조금은 덜 군대 냄새가 풍기지 않는 생활에 두려운 만족을 한다.

곱게 차려입은 처녀의 맑은 눈망울이 마음을 설레게 할 때 1년여의 삭막한 토성은 소리 없이 붕괴된다. 아 환희 보인다. 허물어지는 광경이, 흙먼지 일으키며 사막으로 침몰되는 나의 토성이. 사람들이 전우들이 동기들이 또한 말없이 멀어진다. 그리곤 심장으론 뜨거운 피가 되어 가까와진다.

흐르는 시간은 무섭다. 거기엔 날카로운 비수가 숨어있어 스쳐 지나가며 나를 떨게 한다. 서있는 이는 무섭고 초조함으로 비틀거린다. 고참병이 있고 이등병이 있고 나가 있고 끊치 못할 계급 질서가 있는 곳이다. 객관적으로 나를 보며 웃는다. 마치 거울 저 편의 영상을 담담히 바라보듯 나는 의식을 빼내어 허공에 뿌리고 육신의 나를 관망한다. 참 재미있다. 꼭 바보 같은 놈이 바보같이 웃고 놀라고 괴로와하고 온갖 짓을 하는데 의식을 다시 집어넣어 구원하고 싶다.

인간, 그 치졸의 덩어리여. 아가씨의 한 순간 눈길에도 나는 나를 완전히 절망한다. 도시 헤어날 길이 없다. 숙소 생활 하루가 지난다. 곧 주인이 돌아오리라. 웃음을 짓게 되는 나를 의식은 허공에서 다시 쳐다보리라. 구원할 가망이 없는 놈을, 인간이 되게 할 수 없는 놈을 망연자실 쳐다보리라.


1977/11/16


본부에 들러 오늘도 아쉬움을 남기는 건

한 장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이다

깊은 밤에

흰 종이 마주앉아

먼 나를 생각하며

펜 끝으로 전해지는 오붓한 꿈

그 꿈이 영글어

산 넘고 내를 건너

이제 촉촉히 손에 담기는 정감

빈 손으로 돌아가건만

그래도 만족하는 건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오늘 밤도 꿈을 꾸리란 하이얀 기대


1977/11/18


마이크로버스 안에서 내다보이는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산야는 안개에 가려 수줍은 듯 그 자태를 가리고 있다. 썰렁하나 신선한 아침. 영관급 회색 잠바 맨 뒷자리 구석에 앉아 뽀얘진 창을 바라보며 잠시 명상에 잠긴다. 하늘만큼 높은 장교들의 격의없는 담소가 온 차 안을 훈훈히 한다. 소박한 농과 이어지는 폭소. 부대에선 호랑이 같기만 한 이 분들에게 이런 면도 있는가 싶어 다정한 사람에게 번져가는 친근감이 가슴을 채운다. 손가락으로 창을 맑게하여 나를 바라본다. 마치 회사에 출퇴근하는 민간인 듯한 착각에 빠지고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작은 행복이 온 몸을 휩싼다.

騎牛求牛의 愚를 범하지 않기를, 이젠 이유 없는 저주보다 스스로 행복을 줏으며 살 것을 가벼운 마음으로 이 아침에 다짐한다.


1977/12/1


눈꽃이

한 달을 피우고

한 해를 저문다

석양에

호올로

이 달을 서면

쏴-

밀려들고 나가는 파도 부서지는 소리

눈송이 만들어 한 입 먹고 던지고

까르르 웃고

두 입 먹고 던지고

고향을 앓고

얘들아 이 날은

자리 툭툭 털고나

눈 맞으러 나서렴

꽃 피우러 나서렴


1977/12/20


춥다. 나의 체온으로 이 방안 차디찬 공기를 따스게할 수나 있었으면. 멀리서 부대 점호 나팔 소리도 춥다. 어느 문인의 글에서 자기는 한 겨울 다락방에서 언 만년필로 입김으로 호호 손을 녹이며 그렇게 원고지를 메웠단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불현듯 그게 생각나지만 그러나 자네는 그래도 행복했네 그려라고 말해주고 싶다. 예년에 없던 이상난동현상이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겨울인데, 한 많은 군대 사병 생활인데 어찌 이 마음만 믿으며 자족할 수 있으랴.

옆방에서 들리는 TV 뉴우스는 오늘 고입 연합고사 소식을 알린다. 막내 동생도 오늘 어디선가 운명을 건 일전을 벌였겠지. 부모 없는 외지에서 그 잘난 형들 틈바구니에서 보기에도 처량하게 자란 그 놈의 행운을 빌어야겠구나. 정말 행운이다.

한 해가 저무는 12월 말이다. 오늘도 행정반에 들러 우편함을 들여 보았으나 그 허구 많은 카드 중에서 내 이름을 발견할 수 없었음은 너무 서운했다. 카드 한 장이라도 있었더라면 오늘은 얼마나 화려하였을 것인가. 담임하였던 아이들 60여명, 비록 1년여의 세월이 흘렀을지라도 그래도 너와 나와는 사제간이 아닌가. 잊혀진 망각의 늪으로 점점 빠져 드는 것밖에 시간은 그리 잔혹하기만 한 것일까. 혹자는 탓하리라. 기다리기만 하는 그 일방적 요구며 자기중심적 사고등을.... 그래 기대 이하의 실망이 온다면 그걸 인정함으로써 자조의 체념을 해야지.

K선생과 마신 소주. 그 때 영등포 어느 뒷골목. 아이들 얘기를 하며 마음속을 활활 타오른 것은 무엇이었던가. 이제 군대 생활 반을 살짝 넘기고 한 해를 보내며 차라리 내 모든 걸 이 한 해에 다 띄워 버려야겠다. 눈 감고 훌훌 던져 버려야겠다.


형으로, 오빠로

버리고 버리던 시절

그래도 몰랐던 시절

머나 먼 선생님으로

하루에도 두 번씩 한강을 건너던 시절

덜커덩 건너기만 했던 시절

후미진 곳에 한 늪이 있어

솟아오르는 거품에 몸을 던지는

썩은 산소를 마시려는 빛바랜 고기

차라리 심연 깊은 곳에서

남 모르게 죽어나 질 것을


1977/12/21


13월이란 없는 것이니. 잘하면 X-mas 전후하여 집에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작년에도 꼭 이맘때였다. 첫 귀경길, 며칠 밤을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가. 이브 저녁에 출발하면서 야전 잠바 쏙 다려입고 그래도 무슨 여유에선지 부대 후문 은행나무집에서 사식한 후 같이 가던 동료마저 훌훌 뿌리치고 달려 달려가던 그 때가 아니었던가.

생각난다. 2등병 교육생 시절. 너희들 말이야, 첫 10개월 동안은 집 생각하면서 지내고 다음 10개월은 악으로 보내고 나머지 10개월은 제대 날자 꼽다가 보내는 거다, 군대 생활이란. 그래,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이래서 선배란 졸로서는 존경하게만 되는가보다. 나라고 별 수 있는가. 결국은 그들의 전철을 밟고 가게 되는 것을.

내일 입성하게 된다 할지라도 지금 덤덤하기만 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썰렁하고 그저 고적한 행차가 될지도 모르겠다. 1년은 이렇게 변화시키는데, 반겨주는 가족들은 마찬가지겠지. 야박한 말로 차라리 수중에 孔方兄님이나 있다면 집에 가지 않아도 좋을 그런 사막속의 생활. 오늘도 이 말을 들었다. 야 이러면 오늘 하루도 깨지는 거지. 흘러라 세월아, 그러면 나는야 제대한단다. 기쁨도 함께, 슬픔도 함께라니 천만에 기쁨은 나 슬픔은 너에게. 사뭇 이 모양이다. 삶의 비정이다. 나라고 별 수 없는 나가 불쌍하다.

10년 후를 그려본다. 아니 79년도 이때쯤을 생각해 본다. 터벅한 머리칼에 털외투 걸치고 난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인가. 옛을 회상하면 불현듯 그리워지겠지.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때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겠고 분명 아쉬웠던 시절을 후회하게 되리라. 묘하고도 이해하기에 어렵기만하다. 79년 겨울의 안 형, 당신의 삶의 지리한 시간에 나를 생각 하시요. 당신의 삶의 화려한 순간에 나를 생각 하시요. 채색된 안개의 장막을 헤치시고 진실되게 바라보소서.


새벽 5시, 자명종이 울리면

한 개피 화랑 연기로 하루는 열린다

다만 쓴 맛만을 남기고 허공중에 사라질 그런 하루가 열린다

명령된 삶에 따라

에누리 속에서 나를 건지고픈 가느다란 의식을 안고

싸늘한 기지개 눈 부비고 부엌에 나서면

할머님-

그래도 행복하다한 정든 놈의 목소리가

어느 밤의 예쁜 아가씨의 안스러운 눈초리가

북풍이 되어 쏴 휘몰아쳐 온다

다만

同苦의 벗들과 同苦同樂하면서

한데 모이는 재미로 설익은 밥이라도 즐겨 씹으며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화랑 한 개피 꺼내 물고 자리에 들면

쓴 맛만을 남기고 허공 중에 사라진다

하루가 사라진다


1977/12/22


이젠 그를 이해했다. 카드가 왔다. Season's Greetings란 금박 글씨 밑에 저녁때쯤의 농촌 풍경을 그린 아름다운 서양화가 2/3정도 차지한 하이얀 카드가. 구름을 걸친 먼 산의 웅자며 고추를 넌 초가지붕, 뒤의 미류나무와 버드나무, 손에 잡힐 듯 빠알간 감이 어린이 손 닿을 듯한 낮은 곳에도 달려있고 이제 일을 마쳤는가, 소를 몰고 지게를 지고 물레방앗간 앞을 지나가는 농부들의 모습 또한 정겹기 한이 없다. 어설픈 필체기는 하나 안부 소식도 묻고 있는 이 카드에 나의 하루는 그래도 살아난 것이다.

옥경이 고맙구나. 네가 쓰다가 남아서 문득 생각나 어설프게 보낸 카드라 할지라도 그저 고맙기만 하구나. 그런데 왜 주소는 쓰지 않았니? 너의 마음에 보답하고픈 나의 심정을 묵살하는 의도는 무엇이냐? ‘또 한 해가 오는구나. 옥경이. 새해엔 새 마음으로 신선한 출발이 있길 빈다’ 아마 이런 쬐끄만 글을 쬐끄만 옆서에 써 보내겠지. 이런 세상일수록 너에게 더욱 고마움을 느끼면서.... 이 카드만은 좀 오래 간직해 보리라.

한 인간이 한 인간에 대하여 승리했다는 것은 딴 게 아니다. 화를 내는 상대방을 부처님같이 미소 띠며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는 이미 상대방을 정복한 셈이 되는 것이다. 단지 3일간 출장증 상신했다는 이유로 그 길을 부어 말없이 와서는 맥주 두 병 홀로 들이키고 불러 앉혀 호통 치는 것을 당할 때 와 이건 인간 異事임에 틀림없어라. 조금만 이해한다면 얼마나 좋은 길이 많은가. 빈 말이라도 그래도 약자인데 설득시키며 다음 기회로 미루어 준다든지한다면 그는 40 나이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일 게다. 나는 돌부처가 된다. 그래도 웃음 웃을 줄은 아는 돌부처가 되었다. 나를 닮게 하겠다. 아니 나를 닮았다. 내일이면 동생이라도 불러내려야겠다. 이 好時에 대작하며 즐거움이나 낚을 꺼나.


멋을 모르는 멋쟁이가

멋을 아는 멋쟁이에게

권하는 술은

단 술, 짠 술, 매운 술

크리스마스트리는 예수쟁이의 푸닥거리라고

어린 딸을 울리는

중년의 강심장이여

부다의 가슴이 저러하였을까

부다 앞에서 합장하는

그 마음으로

성탄을 맞으며 살자꾸나

그 마음으로 살자꾸나

1977/12/25


영근아, 알지 모르지만 극과 극이구나. 푸념도 이젠 싫증이 나고 차라리 체념으로만 살기로 한다. 와 주었지, 고맙다. 예수님 탄생 성탄일이다. 종교라면 아직도 어떤 신비하고 뭐랄까 마음 깊숙한데서 솟아나는 흥분을 느낀다. 고양된 상태로 향하려는 초라한 욕망이랄까. 만나서 나눈 얘기는 즐거웠다. 생이란 역전된 상황에서만 그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걸 다시 느껴 보았다. 포장집의 호떡 맛과도 같은 낙수 같은 생의 재미.

가지고도 갖지 못하는 뭇 군상들을 보면 우울해진다. 또 나의 가치관으로 타인을 평가해 버리는 독단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리 저리 생이란 우울한건 마찬가진가 보다. 어떨 때는 지독히도 괴롭다. 나 자신을 주체치 못할 저주가 가슴 가득히 스며 올 때면 인간 그 변덕의 덩어리 앞에서 죄악 앞에서, 쌓은 업보의 보응인가 자꾸만 불어나는 빚에 질색이다. 사랑이 가장 귀중한 것이나 전부는 아니다. 인생을 달관한 듯 모든 일에 허허하는 짓도 재미없으며, 그렇다 젊은이로서 할 짓은 못 되지. 좌충우돌, 전적 포기와 긍정, 한 방의 번갯불 같은 정열, 지혜. 그러나 저 난숙한 솔로몬의 지혜를 바라지는 않는다. 감탄을 자아내는 오차 없는 그것에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나를 그렇게 너에게 말했지. 학문을 하고 싶다. 거기에만이 나의 생존 의미가 있을 것만 같다. 미지의 것에 대한 탐구. 차라리 어려움이란 음식의 양념 같은 것이니 학문이라는 말만 들어도 미래는 투명하게 가슴은 고동치게 된다.


세모의 성탄길

교회의 십자가 앞으로

썰렁한 봉암리의 한 길이 열려 있다

신은

횟가루 칠한 교회의 벽에 갇혀

세속의 길은

종이조각 날리는 겨울, 파장한 장터다

한양 명동길에도

이 곳 촌 조그만 돌길에도

은총은 그렇게 멀고 먼 것이어서

무수히 입 벌리는 피조물에게

신이여

번개불로 오셔서 만나를 내리소서

그 옛날 목자들에게 주셨던 영광의 음성을

가난할 수 없는 20세기 인간들에게

기적으로 임하소서

기적으로 임하소서

이 돌길에서 쓰러진들 좋사오니

피 토하며 이 땅 물들인들 좋사오니


1977/12/28


예비고사 합격 발표. 정희가 뜻대로 되었는지 궁금하다. 내일 시간이 나면 전화나 한번 해 보리라. 요사이 날씨는 예상외로 포근한 편이다. 언뜻 작년 수첩을 들치니 물경 기온이 -18℃,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하다. 조수가 한명 들어왔는데 도시 마음에 들지 않으나 시간이 지나면 또 이해되겠지. 언제는 졸병 받을 그 날을 그리도 고대했었는데 막상 닥치니 그저 텁텁하기만 하구나. 어찌 생각하면 지나온 날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 것 같기도 해 군생활에 대한 보편적인 비관적 견해에 부딪쳐 또 뜹뜰하기만하다.

우체국에서 기다리며 가슴 설레게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수많은 카드더미 속에서 그것이 하나하나 주인의 손을 찾아갈 때 기쁨을 한데 모으면 얼마나 클까? 오늘도 또 공이다. 삶에 회의를 느낀다고 애꿎은 사무실에 돌아와 통탄했지만 괴로운 연말이다. 그러나 실망의 벽은 또 다른 길을 발견하려는 의지를 키워줌에 주의하자. 일면으로만 대상을 바라보고 자족하는 소견일랑 벗을 수 있다면 이래서 이 실망 또한 다행이 아니겠는가. 전방에 보내준 학생들의 위문 엽서를 한 뭉치 얻어와 고르고 골라 부치고 오늘 또 하나 써 놓았는데, 그게 무슨 꼴이냐고 누가 욕한다면 나는 그저 고개 숙이고 도망가는 수밖에 없겠다.


1977/12/29


나의 세모는

그리 요란하지 않아 좋다

서울의 친구여 연례적인 세모의 홍수에

휩쓸려야만 하는 서울의 친구여

그대의 흥분은 곧 서울의 흥분이요

서울의 밤은 곧 그대의 밤인 것을

몸부림치나 그대 혼 먼저 피곤하지 않아

잃어버린 우리의 시간 회색빛 악수

유영하는 어항 속 금붕어의 몸짓으로 오는

서울의 세모는 그대의 세모

나의 밤은

깨끗한 별과 함께 따스한 마음과 함께

고운 신부마냥 그리 오리라

안개에 젖은 고향의 들길도 고만큼 꼭 고만큼만 오리라

하루 이틀


1977/12/30


친구야, 멀고도 먼 곳 하늘의 끝에 사는 우주의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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