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어떤 날은

샌. 2005. 12. 12. 11:42

어떤 날은,

밤길이라도 달려 동해 바다에 가고 싶다.

인적 끊긴 바닷가에 앉아 잠들지 못하는 파도의 속삭임을 듣고 싶다.

옛날 어느 때처럼 오징어와 소주 한 병 옆에 두고 한없이 슬픈 생각에 잠기고도 싶다.

 

어떤 날은,

한 사나흘 폭설에 갇혀 세상과 끊어지고도 싶다.

몇 해전이었던가 강원도에 폭설에 내렸던 때, 미시령 휴게소에 갇힌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그렇게 키를 넘는 눈 속에서 굴을 뚫어 화장실까지 길을 내고, 눈 녹기를 기다리며 고립되고 싶다.

 

어떤 날은,

몸과 몸으로 뜨거운 사랑을 해보고 싶다.

플라토닉 러브 같은 피곤한 사랑 대신 원초적 사랑에 젖어보고 싶다.

단 하루 밤이라도 좋으니 오직 몸과 몸이 부딪치는 예민하고 부드러운 감각에 나를 맡기고 싶다.

 

어떤 날은,

한 열흘쯤 단식을 하고 몸과 마음을 모두 비워내고 싶다.

텅 비어서 식욕조차 사라지고 정신도 그저 몽롱한 상태가 되어 지내보고 싶다.

애증도 욕망도 모두 다 빠져나간 자리, 때를 벗겨내듯 깔끔히 해놓고 새로이 세상살이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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