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샌. 2006. 1. 10. 19:21

해가 바뀌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인사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다. 그러나 이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사실 조금은 곤혹스러워진다. '복'이라는 말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까를 되짚어보게 되기 때문이다. 또 복 받을 짓은 하지 않으면서 복 받기만 바라는 것은 염치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한자인 복[福]을 파자해 보면 보일 시[示], 한 일[一], 입 구[口], 밭 전[田]자로 되어 있다. 이것은 한 사람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인 것 같다. 한 사람이 일 할 정도의 밭이라면 작은 규모의 땅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자를 작은 땀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싶다.

'복'이란 하늘에서 공으로 떨어지는 무엇이 아니고, 일상의 작은 땀에서 얻는 기쁨이고 보람인 것이다. 재물이든 직위든 다른 사람보다 많고 또 앞서 가려는 놀부 욕심과는 결코 다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 대신 '복 많이 지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쓰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지는 못했다.

대신에 거꾸로 한 때는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을 타기도 했다. 유행어가 그 시대의 조류와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면, 이것은 우리 사회의 물신 숭배 풍조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대표적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돈벌이를 드러내놓고 찬양하는 사회는 부패한 자본주의에서 나오는 악취로 뒤덮혀 있음에 틀림없다.

이젠 시골 어르신네의 덕담에도 빠지지 않는 말이 '돈 많이 벌어라'이다.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말은 애석하게도 이젠 들어보기가 어려워졌다.

단순한 립 서비스 차원으로도 볼 수 있는 인사말에 지나치게 딴지를 걸었는지 모르지만, 새해가 되면 듣게 되는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 나에게는 지금도 거북하게 느껴진다. 복을 많이 받으려 하기 전에 먼저 복 받을 내 마음자리부터 살펴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행복하세요'는 참 좋은 인사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외적 조건보다는 내 마음자리의 다스림을 우선시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인도의 '나마스떼' 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종교적인 분위기도 난다.

그리고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평화를 빕니다'도 그런 류의 아름다운 인사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서 나오는 말이 다시 사람을 만든다.

나는 사람의 말들이 욕망 확대형이기 보다는 욕망 축소형이 되기를 바란다. 변질된 의미로 사용되는 '복'을 많이 받기 보다는, 그 빈 자리에 내 소박한 마음의 평화와 기쁨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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