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자성(自省)

샌. 2006. 1. 22. 14:34

따스한 봄날도 어떤 때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황사가 몰려오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고요한 바다도 늘 물결이 일고 있다. 어떤 날은 큰 바람이 불어 세찬 파도가 일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쉽고 편안하게만 사는 집이 어디 있으랴. 바깥 일은 논외로 하더라도 가정 안에서도 부모-자식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이 주기적으로 찾아와 물결을 일으킨다. 어떤 것은 잔물결로 그치기도 하지만, 때로는쓰나미가 되어 집안을 휩쓸어 버린다.

곱게 차려입고 화사한 웃음을 짓는 저 사람들의 표정 뒤에도 남모를 고통의 그늘이 서려있음이 보인다. 겉으로 보이고 느껴지는 그대로가 그 사람의 진면목은아닌 것이다. 사람들의 이면에서 이런 고(苦)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때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질감이 느껴진다. 안 그런 척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아프고 연약한 존재들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인생을 이만큼 살다보니 이젠 좋은 일이 찾아와도 그다지 즐거워지지 않는다. 봉우리가 높으면 그만큼 골짜기가 깊은 법이다. 좋은 일을 탐내는 것은 그만큼의 반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복 받기만을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원리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기보다도 나는 그저 별 일 없이 평범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나쁜 일을 싫어하는 것만큼 좋은 일에도 집착하지 않고 싶다. 삶을 음악에 비유할 때 몇 옥타브씩 오르내리는 삶이 아니라, 도레미 정도 낮은 몇 개의 음계만으로 된 삶이었으면 좋겠다.

새해 첫날에 시작된 부부 사이의 갈등이 이제 조금씩 풀리고 있다.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동안의 일의 전말을 분석해 보면 결코 어느날의 돌출 행동 때문은 아니었다. 뇌관이 폭발한 것은 그동안 서로 간에쌓이고 억눌려 있었던감정이 누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터질 기회를 노리다가 작은 계기에 의해 폭발한 것이다.

마치 지하의 마그마가 모이고 모이다가 화산으로 분출하듯, 판의 비틀림이 가중되다가 어떤 한계를 넘으면 지진으로 에너지 해방이 일어나듯이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탐지기를 꽂고 관찰해도 지진 예보가 어렵듯이, 주의를 하고 신경을 쓴다고 사람 사이의 문제를 미리 알아채고 그래서 쉬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오해가 생기고 문제가 더 엉키기도 한다. 자연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 보다는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힘들다.

나이가 들수록 살아가는 일이 만만하지 않다.

이제 남아있는 날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내 인생의 무게도 가벼워져야 할 텐데, 쓸데없는 욕심만 늘어나고 번민과 다툼만 많아지고 있다. 남에게 베푸는 것보다는 남으로부터 베품과 인정을 받으려고만 하고 있다. 그러니까 심술만 자꾸 늘어나고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삶의 진폭을 줄이고 차분해 지는 길은 아무래도 하심(下心)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욕심을 줄이고 만족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내 행복의 첩경임을 아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제일 필요한 마음 공부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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