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수레바퀴 아래서

샌. 2006. 1. 17. 17:07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중요성은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연초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사람들의 새해 소망을 조사했더니 1위가 대박을 터뜨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땅에서, 주식에서, 또는 로또 대박이 새해 소망 수위를 차지했다.

돈이 많다는 것, 또는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이젠 개인의 전인적인 능력과 동일시되어 버렸다.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 남성을 선택할 때 제일 조건 또한 경제적 능력이라고 한다. 이것은 후손을 잘 기르기 위한 본능적 이끌림일 테니 비난할 수도 없다. 그만큼 사회가 돈 중심의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성격이라든가 사람 됨됨이가 우선 순위에 올랐었다. 가난해도 성격만 좋다면 결혼 후보로 당당히 설 수 있었다.

얼마 전에 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풍문으로 들렸던 소식으로는 그동안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워졌었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본인이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 왔었다.

간단하게나마 직접 그동안의 과정을 얘기 듣고 무척 마음이 착잡했다. 사업이 망해서 집도 앗기고, 지금도 월금의 반이 차압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맞벌이를 하던 중산층 가정이 한 순간에 무일푼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나마도 한 쪽은 아직 직장이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빚 관계로 인해 부부도 서류상의 이혼을 했다니, 5 년째 지속된 이런 고통을 제 삼자가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가까운 친척에게 조차 상세한 저간의 사정을 얘기하지 못했다고 했다.

친구는 그 동안의 심경을 '외로웠고 굴욕적이었다'로 표현했다. 그리고 굴욕적이었다는 심정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외로웠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으나, 굴욕적이었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는 놀라웠고 마음이 아팠다. 괜히 자격지심이 아닌가고 되물었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헤아릴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사람들이 자살하는이유는 분명 그런 굴욕감 때문일 거라고 친구는 눈물을 배이며 잔잔이 말했다.

돈이 있으면 사람이 모이지만, 돈이 없으면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세상의 현실이다. 가진 사람이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의 무력감과 충격을 실제 당해 보지 않으면 실감하지 못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충격의 완충작용을 해 줄 사회 안전망이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다. 물론 과욕을 부리는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도처에위험한 낭떠러지가 숨어있는 사회 조직 또한 정상적이지 않다.

또한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돈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돈 보다 다른 가치가 우선되는 사회라면 결코 이런 종류의 비극들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친구가 느낀 굴욕이라는 것은 결국 자본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깔린한 인간의 비명 소리로 나에게는 들린다. 그 수레바퀴는 무지막지하게 우리들 사이를 굴러다니며 희생양을 찾고 있다. 이 수레바퀴의 가속도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들 각자의 저항밖에는 없는 것 같다.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인지는 몰라도 그런 작은 힘들이 모일 때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고 믿는다.

친구는 다시 전열을 재정비하여 세상의 싸움판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보다도 더 이를 악물고 마치 복수를 하려는 심정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친구는 기도원을 찾아다니며 마음을 위로 받는다고 했다. 비록 입 밖에 내지는 못했지만 아마 신이쓰라린 시련을 내려 주신 것은 더 깊은뜻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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