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첫째의 첫 출근

샌. 2006. 2. 1. 17:49

오늘은 첫째 아이가 직장에 첫 출근을 한 날이다.

지난 몇 달간 취직을 하기 위해 여러 군데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더니 한 작은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구직 기간이 길지 않은 것 같지만,이름 있는 회사에 낸 원서는 대부분 서류 전형에서 탈락해서 아이 나름으로는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 정도의 적당한 선에서 만족해 준아이의 태도가 고맙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계속 청년 실업자의 대열에 서 있어야 했을 것이다.

직장을 구하는데 아빠가 힘이 되어주지는 못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도 안스럽고 안타까웠다. 그것은 내 아이가 취직을 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가지는 비인간적인 시스템 때문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한국 사회는 사람이 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꼭 전쟁터 같다. 초, 중, 고를 거치며 대학에 들어가는 과정이 그렇고, 대학에서 다시 사회로 진출하는 과정 또한 어떤 면에서는 고행(苦行)이라고 부를 정도다. 그렇다고 직장에 들어가면 달라지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거기에는 또 피 말리는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그런 정글의 법칙이 점점 심화된다는데 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당연시하고 또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수용하는 각자의 삶의 태도가 문제이다. 내가 볼 때 공적인 교육 과정이란 것은 인간을 이런 경쟁의 체제에 길들이는 세뇌 작업이 아닌가 하고 여겨질 때도 있다. 이것이 내 아이가 직장을 가지게 되어 다행이라고만 안도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아이의 행복이 결코 보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는 내 아이의 미래가 계속되는 경쟁과 스트레스로 이어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 나가고 경쟁에서 이겨 뛰어난 사람이 되길 바라지도 않는다. 다행히 아이는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자신의 처지에서 약간 부족한 듯 보이는 곳에 만족해 주었다.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오늘 뉴스에는 신입 사원의 절반 가량이 1년 이내에 직장을 옮긴다고 한다. 더 나은 자리와 보수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회사들 또한 사원을 뽑을 때 경력자를 우대함으로써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은 경쟁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개념인 것 같다. 그러나 유능한 인재를 뽑는다는 것이 결국은 제 살 깎아먹기가 아닌가 싶은 것이 내 좁은 소견이다. 결국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경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내 아이가 자신이 선택한 일자리에서 비록 다른 곳에 비해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참을 줄도 알며 오래 근무해 주었으면 좋겠다. 시류에 따라 돈 몇 푼에 이러저리 옮겨다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선택도 아이의 몫이지 부모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수는 없다. 참견한다고 이런 고리타분한 생각이 먹혀들지도 않을 것임을 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안스러운 마음이 더하다.

아마 아이의 일생에서 오늘은 사회에 첫발을 딛는날로 의미있게 기억될것이다. 아이는 인생의 한 봉우리를 넘어 또 다른 봉우리를 올라가려고 출발한 셈이다.

아이가 힘든 세상살이를 통해 스스로 행복을 찾고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길 소망한다. 행복은 밖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서 발견하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에게만 갇혀있지 말고 이웃도 살펴볼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첫째야! 너의 첫걸음을 축하하며, 맑고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정진 하길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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