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국익과 진실

샌. 2005. 11. 30. 11:29

'맹자가 양(梁) 혜왕(惠王)을 만났다.

"어르신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우리나라에 이익이 되겠군요."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하십니까?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 이익이 될까?' 하시면 대부(大夫)들도 '어떻게 하면 우리 가(家)에 이익이 될까?' 하고, 사(士)와 서인(庶人)들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하게 됩니다. 이렇게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을 다툰다면 국가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만일 정의를 나중에 생각하고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면 서로를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인의만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어찌 이익을 말씀하시겠습니까?"'

황우석 교수의 난자 취득 과정에 대한 최근의 논란을 보면서 '맹자' 첫 부분에 나오는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황교수 연구의 문제점을 제기한 'PD수첩'에 대해 열렬 네티즌들의 공세로 광고가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급기야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 마디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란 국익을 위해서는윤리적 문제는 덮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하고, 어느 정도의 사례금이 전달된 것이 무슨 큰 문제냐는 인식도 있는 것 같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등장하는 국익 우선의 논리에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무서운 독소가 숨어있다. 얼마 전 기업인 수사를 하면서도 검찰이 한 얘기가 국익을 위해서 불구속 수사를 했으며 사건을 확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라크 파병도 결국 국익 때문이라고 했다. 국익 앞에서는 어떤 불법도 용서가 된다면 우리 사회의 양심은 점점 병들게 될 것이다.

모두 나라들이 서로 국익을 내세우고 경쟁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힘 있는 나라가 약한 나라를 먹어버리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 되고 말 것이다. 미국이도덕적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국익을 위해서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을 비판할 명분은 무엇인가? 맹자의 말처럼 국가나 개인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싸울 때세상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당시의 춘추전국시대가 그러했다. 이익보다는 인과 의의 길을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맹자의 목소리는 지금 여기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 사태에서도 관용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황교수에 대한 비판만으로도 역적 취급을 받을 만큼 분위기가 편파적이고 험악해져 있다. 방송 광고를 취소하라는 요구는 또 다른 대중 폭력이다.

한동안은 전교조에 대한 마녀 사냥식 여론몰이가 기승을 부리더니 이젠한 방송 프로그램이동네북이 되고있다. 방송을 보지 않아 얼마나 심한 내용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황교수의 연구 내용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윤리적 문제에 대해 쉬쉬하던 것을 공론화 시켰지 않았나싶다. 그 과정에서 일부 도가 넘는 표현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이렇게 요란하게 들끓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나에게는 무뇌아에 가까운 대중들의 천박성으로밖에는 비쳐지지 않는다.

사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철저하고 엄격한윤리적 검증을 받아야 마땅하다. 난자에서 핵을 빼고 체세포의 핵을 넣어 복제 배아를 만드는 것인데, 복제 개 스너피의 성공은 인간 복제도 멀지 않았음을 예견케 한다.

이런 생물학적 혁명은 핵폭탄 이상으로 인류에 치명적일 수 있다. 과거에도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늘 저항을 받았다고 변명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런 것들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인류의 삶이 통째로 변하고 잘못될 경우 파멸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엄정한 국제 윤리 규정의 준수가 필요하다고 본다. 난자 몇 개쯤은밀하게 채취했다고 뭐가 문제냐고, 비밀리에 실험을 하더라도 다른 나라보다 앞서서 반도체의 몇 백배되는 부가 이익을 내야 된다고, 또는 급한 난치병 환자의 치료가 급선무라고 하는 논리는 무척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하나를 얻으려고 하다가 잘못하면 전부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치에 대한 증오심으로 핵개발을 건의했지만 결국 후회하고 핵무기 반대 운동으로 돌아선 아인시타인의 전철을 다시 밟아서는 안된다고 본다. 지금 우리에게는 좀더 넓고 깊은 시각이 필요하다.

생명을 다루는 과학자의 윤리 의식과 함께 국제적인 연대와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대중들의 의식이 깨어있어야 한다고 본다.

맹자의 말처럼 이익보다는 인의(仁義)가 우선되고, 진실이 최고 가치가 되는 세상이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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